정치적 이용 통해 자산 손실 피해나가려는 듯
[글로벌이코노믹=이성규 기자] 현지시간으로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재닛 옐런 의장은 취임 후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갖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옐런 의장은 양적완화 축소 규모를 다음달부터 100억 달러 추가해 총 550억 달러로 줄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기준금리를 내년 초에 인상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는 전임 버냉키 전 의장이 지난해 결정해 시행에 들어간 일로 새삼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당시 연준은 테이퍼링 결정한 이유에 대해 고용시장과 전반적인 경기상황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준 부의장이었던 옐런 의장이 테이퍼링 의지를 지속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날 미 연준의 발표 중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실업률 목표치 삭제다. 그동안 실업률 목표치는 미 연준의 통화정책에 중요한 변수 중 하나였다. 그 변수를 스스로 삭제한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경기회복이 두려운 미 연준 미 연준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경기회복이 그리 달갑지는 않을 수 있다. 경기 회복으로 인한 금리 상승은 그들이 가진 막대한 양의 채권 가격을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미 연준이 테이퍼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연준의 자산포지션을 꼽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연준의 자산은 약 4조 달러로 이는 대부분 미국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지속적으로 양적완화를 실시해 자산을 늘렸으며 초저금리 기조 또한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금리는 하락추세를 그렸고 이에 연준은 양적완화를 통해 채권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차익을 올렸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의 가격은 상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한해는 달랐다. 2012년 말 연준이 장기 국채 매입을 결정한 이후 지난해 말 FOMC 회의에서 테이퍼링을 결정하기까지 자산이 1조 달러 더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금리는 10년 만기 미국채 기준으로 저점 대비 100bp 상승했다. 채권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오동석 이트레이드 증권 채권투자전략팀 수석연구원은 “엄청난 평가손실이다”며 “민간투자기관이었다면 벌써 책임자가 교체됐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이어 “연준은 서둘러 테이퍼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금리의 상승이 무섭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더욱 큰 문제는 나중에 더 불어난 연준의 채권을 누가 받아주느냐는 것이다. 초저금리 기조로 인해 채권가격은 더 이상 상승하기도 힘든 구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실업률은 지난 1월 6.6%, 2월 6.7%로 종전 연준의 실업률 목표치인 6.5%에 근접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연준의 금리 인상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준은 이번 FOMC 회의에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변경했다. 실업률 목표치 6.5%를 없앤 것이다. 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가격 하락으로 연준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치명타를 제거한 것이다. 이에 오 연구원은 “애초부터 미 연준은 실업률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며 “금리 인상 트리거 중 하나인 실업률 목표치를 삭제했다는 것은 금리 인상이 두렵다는 것을 또 한 번 증명한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테이퍼링’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의 실업률과 고용에 주목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는 연준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연준은 자신들의 양적완화 결과가 자산시장과 실물시장의 괴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주가는 작년 12월 기준 산업생산 대비 약 22% 정도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주가는 물론 부동산시장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양적완화로 풀린 화폐가 실질 투자보다는 자산시장에 편중된 것이다.
실물시장과 자산시장과의 괴리가 축소되지 않는 이상 연준의 통화량 회수는 꿈꾸기 어렵다.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을 시도할 경우 자산시장의 붕괴가 실물시장까지 여파를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현재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해 연준이 양적완화 규모를 늘려야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자산시장의 버블을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연준이 할 수 있는 것은 테이퍼링뿐이다.
한편 금리 인상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이는 연준이 국채 자산 보호와 함께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 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실제 GDP가 잠재 GDP보다 낮은 수준이다. 2009년 3분기 아웃풋 갭(* 용어설명)은 -6.4%에서 2013년 4분기에는 -3.2%로 축소되어 괴리가 해소되고 있으나 여전히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옐런은 왜 금리 인상을 시사했나
옐런 의장은 이날 “양적완화 이후 상당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며 “상당기간은 약 6개월의 시차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즉 내년 2분기경 금리 인상을 하겠다는 시사를 한 것이다.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사실상 바라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을 시사한 이유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동석 연구원은 “옐런 의장의 발언은 무의식중에 나온 실수로 보인다”며 “지난 FOMC 회의에서 매파 위원들의 금리 인상 주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매파들이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금리 인상을 정치적 이슈로 부각시키려는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전했다.
매파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과거 핵심정책이었던 세제개혁, 이민개혁법, 총기규제 등에 번번이 반대표를 던져 이슈로 부각시켰다. 금리 인상이 연준에 치명적인 것을 알면서도 매파성향의 의원들은 금리 인상을 유도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이슈로 인해 금리가 인상된다면 미 연준 입장에서는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정치적 공방으로 인한 불안과 최근 가중되고 있는 중국 경제 둔화 우려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적 불안 요소가 확대되면 금리 인상으로 인한 채권가격 하락이라는 충격을 상충할 수 있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경우 연준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산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으며 안정적으로 테이퍼링을 종료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 예상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금리 인상이 상당히 빨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김기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옐런 의장 발언을 고려할 때 금리 인상 시기는 내년 중반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중국 경제와 우크라이나 관련 대외 불확실성이 존재해 실제 금리 인상 시기는 늦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 정치적인 공방을 고려하면 오히려 금리인상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 아웃풋 갭(Output Gap) : 실제 GDP와 잠재 GDP의 차이를 말한다. 실제 GDP가 잠재 GDP보다 낮은 수준이라면 이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 반대의 경우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한다고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