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마음산책(316)]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공감과 감정이입의 경계

범죄자와 하나 되는 순간, 형사는 사라진다
2022년 1월 14일부터 3월 12일까지 방영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한국형 범죄 심리 드라마 가운데서도 인간 내면의 어두운 영역을 깊이 파고든 수작(秀作)이다. 이 드라마는 2022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남자 부문 신인연기상과 여자 부문 신인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 송하영은 프로파일러로서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과정은 단순한 추리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자와의 미묘한 심리적 거리 조절을 둘러싼 내적 투쟁을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두 개념, 즉 '공감(sympathy)'과 '감정이입(empathy)'의 차이를 드러내며, 상담 현장에서뿐만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놓치기 쉬운 통찰을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개념을 혼동하지만, 이들의 차이는 상담자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나아가 현대인이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공감의 함정: 범죄자의 마음을 읽다 자신을 잃어버리다
드라마 중반부, 주인공 송하영은 연쇄살인범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몰입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린다. 그는 범죄자의 고통, 분노, 왜곡된 사고에 자신을 투사하며 '마치 내가 그인 듯' 내면의 감정에 깊숙이 빠져든다. 다시 말하면 범죄자와 깊은 공감(sympathy)을 하게 된다. 범죄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니 검거하기 쉬울 것 같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이 이야기는 범인을 쫓는 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담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내담자의 아픔을 듣다 보면 상담자도 울고, 분노하고, 절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순간에 상담자가 내담자와 동일시하면, 즉 공감하면 함께 무너진다. 상담의 초점은 내담자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다루는 데 있는 것이지, 상담자 개인이 감정에 잠식되는 데 있지 않다.
내담자의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해 심리적으로 하나가 되는 경우 내담자만 남고 상담자가 없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비평가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과 동일시해 같은 감정을 느끼면 영화 속 주인공만 남고 비평가는 없어지는 꼴이 된다. 그러면 영화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분석할 수 없게 된다.
감정이입: '마치 ~인 것처럼'이라는 태도
그래서 상담에서는 공감보다는 '감정이입(empathy)'을 강조한다. 'em'은 '안으로'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이니 'empathy'는 내담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만 상담자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경계를 가지고 있는 관계다. 그래야 내담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이해하는 상담자가 계속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심리학의 기초를 놓은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상담자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감정이입을 "내담자의 내적 세계를 마치 내 것처럼 느끼되, 결코 내 것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as if'의 태도, 즉 '마치 ~인 것처럼'이라는 태도가 무너지면, 즉 '내담자가 나'라고 착각하면 상담은 길을 잃는다. 반대로 이 균형이 유지될 때 내담자는 "내 마음을 누군가 정확히 알아줬다"는 경험을 통해 회복의 길로 들어선다.
드라마 속 송하영이 처음에 범죄자와 동일시해 자신을 잃어버린 것은 감정이입(empathy)이 아닌 공감(sympathy)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후 송하영은 다시 복귀한다. 이번에는 범죄자의 심리를 여전히 깊이 탐색하지만, 이전처럼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는 범죄자의 분노와 공허함을 이해하되, 그것을 자신의 감정으로 삼지 않고 감정이입적 태도를 견지한다.
즉 상담자가 내담자의 감정 세계를 깊이 이해하되, 자신의 감정 세계에 완전히 몰입되거나 갇히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를 가진다. 다시 말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전문 상담자가 훈련받는 핵심 태도다.
공감과 감정이입의 실제적 차이
공감과 감정이입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범죄자가 "나는 버려졌다"라고 토로할 때, 공감은 "나도 버려진 것 같다"라는 자기-타자 경계의 붕괴를 초래한다. 상담자 자신도 버려진 느낌에 빠져들어 내담자와 동일한 정서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담자는 내담자를 도울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같은 구덩이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이입은 "당신이 느낀 그 버려짐의 감각이 얼마나 깊었는지 내가 지금 그 마음을 마치 내 것처럼 느낀다"라고 표현하되, 여전히 상담자로서 자기 위치를 유지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감정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이 태도야말로 드라마 속 송하영이 두 번째로 선택한 길이며, 상담자가 실제 현장에서 견지해야 할 전문적 태도다.
이러한 구분은 비단 상담 장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이 두 가지 태도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 가족이 슬퍼할 때, 우리는 그들의 감정에 완전히 빠져들어 함께 무너질 수도 있고, 아니면 그들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도울 수 있는 위치를 유지할 수도 있다. 후자가 바로 건강한 감정이입이다.
감정이입의 균형이 상담자를 지킨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슬픔을 함께 느끼면서도 그 감정에 잠식되지 않고 내담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이입은 단순히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유지한 이해와 반영의 과정이다. 상담에서 이 균형을 잃는 순간, 상담자는 내담자를 돕기보다 함께 휘말려 버리게 된다.
현대 사회의 공감 중독: 나를 잃어버리는 위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단순한 범죄 수사극이 아니다. 이 드라마를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또한 자신을 지켜야 자신만의 판단을 유지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지만 그 대가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즉 '나'와 '너'가 감정적 일체가 된 '우리'만 존재하고, 개인의 독특성과 주체성은 잃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정 정치 집단, 특정 팬덤, 특정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구성원들은 집단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돼 개인으로서의 판단력을 상실한다. 집단이 분노하면 함께 분노하고, 집단이 환호하면 함께 환호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라진다.
건강한 관계를 위한 감정이입의 기술
건강한 인간관계는 감정이입에 기반한다. 친구의 고통을 이해하되 나까지 무너지지 않을 때, 가족의 슬픔을 함께하되 내 삶의 중심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다. 반대로 타인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리면, 우리는 타인을 도울 수 없다. 두 사람이 함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송하영의 여정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오랫동안 심연(深淵)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송하영은 범죄자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순간, 거의 괴물이 될 뻔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왔다. 범죄자의 마음을 여전히 읽되,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라는 명확한 선을 그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입이다.
우리도 매일 크고 작은 '괴물'들과 마주친다. 타인의 분노, 슬픔, 절망, 광기. 이것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되 그것에 잠식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되 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