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47장
이미지 확대보기큰 바윗돌에 하늘의 별을 자세하게 그려 놓은 천문도를 보면 고대 선각자들 역시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천상천하를 다 보았을 것 같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마음의 눈(心眼)으로 다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대도(大道)에 이른 자의 마법 같은 초월적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번거로운 세상에 몸담고 사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하긴 세속을 멀리하고 수도에 전념하는 도인이라면 혹 천상천하를 다 볼 수도 있을 테지만 웬만해서는 이룰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 옛날의 노자는 꿈같은 경계를 뛰어넘은 것 같다. 도를 얻지 못하는 한계를 "멀리 나가면 두루 아는 것이 적어진다"는 말로 표현했다. 무슨 뜻인가? 일심에 이른 상태에서 사물을 마음의 눈(心眼)으로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눈에 보이는 시력의 경계는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과거에 시력의 한계를 초월한 마음의 눈으로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본 놀라운 경험이 있어서 노자의 말을 이해한다. 젊은 시절 한때 명상 수행에 뜻을 두고 열정을 쏟은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인연으로 지리산 청학동 촌장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손님을 반갑게 맞이해준 촌장이 100년 묵은 소나무 순을 빚어 3년 땅속에 묻어둔 술이라며 작은 찻잔에 한가득 부어 권했다. 한 모금 마셔보니 그야말로 혀끝에 녹아들어 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취기가 한꺼번에 올라 잠시 벽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뻗고 눈을 감았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노자는,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문으로 엿보지 않아도 천도를 본다. 그러나 문밖에 나가서 먼 곳까지 두루 보면 아는 것이 적어진다. 하지만 성인은 밖에 나가 돌아다니지 않아도 다 알고, 다 보지 않아도 이름을 알고, 위하지 않아도 다 이루어 놓는다고 했다.
누구든 명상으로 일체 사심을 버리고 한순간만이라도 일심에 들 수만 있다면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곳을 눈을 감고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옆방의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구 반대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보고 다 알 수 있다. 어쩌면 예견까지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리산 경험 외에 또 다른 경험도 있다.
혼자 명상 중에 정신이 흐릿해지며 깜박 잠이 든 듯도 하고, 깨어 있는 듯도 한 순간이었다. 흐릿한 하늘에 까마귀 떼 같은 수많은 물체가 하늘을 떼 지어 날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폭탄을 퍼부었다. 사방에 빛이 번쩍였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시간은 불과 몇십 초에 불과했다. 명상에서 깨어나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미군이 이라크를 공격한다는 걸프전 뉴스를 들었다.
이처럼 한순간이라도 한마음에 이르면 초인적인 능력으로 신비한 광경을 예견할 수도 있다. 아무튼 깊은 삼매(三昧)에 들면 천지자연의 도리를 깨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체의 운행을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관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옛날 노자도 그런 경지에 들었을 것 같다.
이미지 확대보기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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