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독일, 86조원 '안보 지갑' 연다…유럽 방산주 '실적 랠리' 가속

글로벌이코노믹

독일, 86조원 '안보 지갑' 연다…유럽 방산주 '실적 랠리' 가속

전후 최대 500억 유로 조달 계획 승인 임박…라인메탈 등 주가 급등
"수십 년간의 과소투자 끝내고 재무장 본격화"…장기 수익성 확보 평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인 500억 유로(약 86조 원) 규모의 국방 조달 계획을 확정하며 '재무장(Remilitarization)'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인 500억 유로(약 86조 원) 규모의 국방 조달 계획을 확정하며 '재무장(Remilitarization)'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인 500억 유로(86조 원) 규모의 국방 조달 계획을 확정하며 '재무장(Remilitarization)'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선언했던 국방비 증액 약속이 실제 집행 단계로 접어들면서, 유럽 방산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반등했다고 미 경제방송 CNBC17(현지시각) 독일 의회의 예산 승인 소식과 이에 따른 시장 반응을 집중 보도했다.

'빈 깡통' 독일군 옛말…개인 장구류부터 미사일까지 전면 교체


독일 연방의회 예산위원회는 17일 회의를 열고 대규모 국방 조달 안건을 논의했다. 이번 예산안은 수십 년간 투자가 부족했던 독일 연방군 전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지 언론과 의회 안건 문서에 따르면, 이번 패키지에는 군 장병을 위한 개인 보호 장비와 피복류 구매에만 220억 유로(38조 원)가 배정됐다. 또한, 보병 전투차량 도입, 방공망 구축, 미사일 시스템 현대화 등 핵심 무기 체계 보강에 100억 유로(17조 원)가 투입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증시는 즉각 반응했다. 17일 오전 런던 증시에서 스톡스(Stoxx) 유럽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지수는 1.2% 상승했다. 특히 독일의 대표 전차 생산 기업인 라인메탈(Rheinmetall)1.8%, 군사 감지 센서 전문 기업 헨솔트(Hensoldt)2.4%, 변속기 제조사 렌크(Renk)2.8% 각각 오르며 상승장을 주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가능성이 거론되며 주춤했던 방산주가 하루 만에 반등에 성공한 셈이다.

단순 '선언' 아닌 실제 '계약'…방산기업 곳간 채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예산 승인이 갖는 의미를 단순 금액 이상의 '구조적 변화'로 해석했다.

드미트리 포노마료프 반에크(VanEck) 방산 ETF 상품 매니저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500억 유로 규모 조달 패키지는 전후 독일 국방 장비 승인 중 단일 건으로는 최대 규모"라며 "라인메탈과 헨솔트 같은 유럽 상장 방산 기업뿐 아니라 중소 공급업체들까지 낙수 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번 결정은 독일의 전체 국방 예산 총액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의회가 구체적인 조달 계약을 공식 승인했다는 데 방점이 있다""이미 배정됐던 자금이 확정된 '수주(Order)'로 전환되는 과정이므로 투자자들이 기다려온 수익 가시성이 확보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독일 정부가 2022년 숄츠 총리의 '시대전환(Zeitenwende)' 연설 이후 약속했던 1000억 유로(173조 원) 특별방위기금이 실제 기업의 매출로 연결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스톡스 유럽 방산지수가 올해 들어서만 50% 이상 급등한 배경에는 이러한 정부 지출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다. 특히 라인메탈 주가는 올해 150%나 폭등하며 유럽 안보 지형 변화의 최대 수혜주로 떠올랐다.

"절차 빨라졌다"…유럽, 글로벌 방산 허브 도약 시동


독일의 국방 조달 프로세스가 과거보다 신속해졌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관료주의적 장벽 탓에 무기 도입에 수년이 걸리던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마이클 필드 모닝스타 수석 주식 전략가는 "통상 정부 예산 통과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최근 절차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이는 방산 기업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군사 보호 장비 예산이 대규모로 배정된 것은 독일 정부가 그동안 얼마나 국방비를 지출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필드 전략가는 특히 라인메탈을 유럽의 '톱 티어(Top-tier)' 방산기업으로 꼽았다. 그는 "특정 무기 체계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기업이 됐다""유럽 기업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구축하며 유럽을 전 세계적인 방위산업 허브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번 예산 승인으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 방산기업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수주잔고를 확보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유럽 각국 정부와 나토(NATO)의 국방비 증액 기조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여, 관련 기업들의 실적 호전 추세가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미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만큼, 추가 상승 여력은 개별 기업의 수주 이행 능력과 수익성 개선 속도에 따라 갈릴 것이라는 신중론도 일부 제기된다.

'메이드 인 저머니' 우선주의…K-방산, 납기·가성비로 '빈틈' 노려야


이번 대규모 예산 집행의 뚜렷한 특징은 철저한 '자국 산업 우선주의'. 라인메탈과 헨솔트 등 독일 토종 기업이 수혜의 중심에 선 것은, 단순한 전력 보강을 넘어 유럽 방산 공급망의 자립과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베를린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는 레오파드 전차 등 주력 무기 체계에서 독일 시장 직접 진출을 타진해 온 한국 방산기업들에는 단기적으로 높은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방산 전문가들은 '납기 경쟁력''양산 능력'이 여전히 한국의 핵심 기회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독일 기업들의 증설된 생산라인이 완전 가동되어 물량을 쏟아내기까지는 수년의 시차가 존재하는 탓이다. 이에 따라 독일이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발생한 전력 공백을 급하게 메워야 하는 탄약 분야나, 독일의 지원을 받는 동유럽 국가들이 한국산 무기를 도입하는 이른바 '백필(Back-fill, 전력 공백 긴급 보충)' 수요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