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국토를 경영하라 : 국토는 공간이 아니라 포트폴리오다

글로벌이코노믹

[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국토를 경영하라 : 국토는 공간이 아니라 포트폴리오다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국제정치학 박사)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국제정치학 박사)이미지 확대보기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국제정치학 박사)
미·중 전략 경쟁, 에너지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국가 경쟁력은 더 이상 산업 정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토를 하나의 '거대한 투자 포트폴리오'로 본다면 어떨까. 그동안 국토는 주로 '균형발전'이라는 가치 중심의 언어로 다뤄져 왔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고, 소외지역을 지원하는 정책이 주를 이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홀대론이 나온 원인이다. 그러나 전략적 관점에서 국토는 혜택 분배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핵심 자산을 정밀하게 배치·운용해야 하는 포트폴리오다.

해리 마코위츠(Harry Markowitz)의 포트폴리오 이론은,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들을 결합할수록 전체 시스템의 변동성이 낮아진다고 본다. 국토 운영도 마찬가지다. 산업·기능·에너지 구조가 다른 권역을 전략적으로 결합할수록 국가 전체의 복원력은 높아진다. 이는 단순한 지역정책이 아닌, 국가 리스크 관리 전략이다.

지도를 전략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자. 동해권은 원전·가스·수소 인프라가 집적된 에너지·북방 물류의 핵심축이다. 서남권은 해상풍력과 그린수소의 전초기지로, 청정 전력의 글로벌 시험장이다.
수도권은 데이터·금융·고부가 서비스가 집중된 글로벌 허브이며, 충청권은 반도체·배터리 산업의 핵심 벨트다. 부산은 해양금융과 해운의 중심지이고, 대구·경북은 방산과 모빌리티 산업의 거점이다. 이 구조는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산업·에너지 지도가 이미 기능별 분업 체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는 행정구역의 집합이 아니라, 기능별 자산이 전략적으로 배치된 구조적 지도다. 관건은 이 자산들이 고립되어 있느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시너지를 내느냐에 달려 있다. 국가는 '자산 운용자(Asset Manager)'로서 규제 완화·세제 인센티브·인프라 투자를 어디에 집중할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런 관점은 메가시티 전략, 초광역 협력 구상, 첨단산업벨트 정책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흩어진 정책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엮는 체계가 된다.

균형발전은 '동일한 분배'가 아니라 '기능의 최적 배치'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에너지 대량생산 지역에 전력 다소비 산업을 유도하고, 금융과 데이터 산업은 글로벌 연결성이 강한 지역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은 경쟁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가치사슬로 묶일 수 있다.

리스크 관리 면에서도 포트폴리오적 사고는 유효하다. 산업과 인구가 특정 지역에 집중된 구조는 작은 충격에도 국가 전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낳는다. 권역별 기능 분산은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다. 미·중 전략 경쟁, 에너지 가격 변동, 공급망 교란이 중첩되는 복합위기(Polycrisis) 시대에 국토의 기능적 분산은 곧 국가 안보다.
국토를 포트폴리오로 본다는 것은 '공간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도로·항만·산업단지를 개별 프로젝트로 보는 대신, 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현금흐름과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통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에너지 인프라는 산업경쟁력의 원천이고, 항만은 물류를 넘어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자산이다. 데이터센터는 디지털 경제의 기반이자 새로운 전력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 거점이다. 이 모든 자산을 통합 설계도로 묶을 때 국토는 단순한 관리 대상에서 '창조적 경영'의 대상으로 바뀐다.

이 전략의 첫 실험장이 바로 해오름 동맹이다. 울산·포항·경주를 잇는 동해권은 에너지 생산과 소비, 북극항로 물류, 제조, 해양금융, 산업데이터를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하는 모델이다. 해오름 동맹은 지역 협력 구상이 아니라 국가 자산 재배분의 새로운 설계도다.

지난 60년이 성실한 성장의 시대였다면, 앞으로의 60년은 설계자의 시대다. 국토를 관리하면 현상은 유지되지만 가치는 정체된다. 국토를 경영하면 그 가치는 증식된다. 대한민국은 이제 '공간을 분배하는 나라'에서 '공간을 설계하고 운용하는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