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가격과 상속·증여에만 들이대는 대중적 이중성
‘불로소득’ 공식 통계 용어 아니다…선동적·징벌적 언어 걷어내야
‘불로소득’ 공식 통계 용어 아니다…선동적·징벌적 언어 걷어내야
이미지 확대보기낡은 이념의 전래와 주홍글씨가 된 ’불로소득‘
‘불로소득’의 뿌리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언급한 ‘미실현 증분(Unearned Increment)’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로 개설 등 사회적 발전에 따라 토지 소유자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얻게 되는 '자연적 가치 증가'를 지칭한 말이었다.
이를 한자어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처음 번역한 것은 사회주의 사상이 고조되던 근대 일본이었다. 일제강점기 국내로 유입되면서 지주들의 소작료나 자본가의 이윤을 비판하는 맥락으로 쓰이다가, 1970~80년대 부동산 투기를 비판하는 대중적 용어로 각인되었다.
문제는 오늘날 이 용어가 아파트 가격 상승과 상속·증여를 정죄(定罪)하는 ‘현대판 주홍글씨’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아파트 가격 상승분을 불로소득이라며 세금으로 모조리 환수하겠다는 압박 속에, 주민들은 졸지에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세금 폭탄의 불안에 떨고 있다. 조세와 투자 측면에서 아파트는 분양가라는 자본이 투입된 자본소득이며, 매매 시 발생하는 차익은 ‘양도소득’이다. 그럼에도 이를 불로소득으로 낙인찍어 대중의 감정적 동조를 끌어내는 정치와 언론 보도가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의 상속·증여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잘 아는 사실이다. 정작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상속·증여세가 없고, 베트남은 10% 단일세율에 직계존비속 간 상속은 전면 면세다.
국내 주식 시장의 일반 투자자 차익에는 조세 저항에 부딪혀 손도 대지 못하면서, 부동산 양도세는 OECD 최고 수준이다. 양도세 기본 최고세율은 49.5%(지방세 포함), 다주택자 중과 최고세율은 82.5%(지방세 포함)에 달하는 기형적 세제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의 부동산 양도세 최고세율 24%와 대조적이다. 우리가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한참 벗어난 기형적 세제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불로소득과 부의 세습은 절대 안 된다”는 고착화된 이념적 도그마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적 선동 때문이다.
자본소득에 들이대는 ‘이중잣대와 내로남불'
불로소득을 한자어 그대로 풀면 근로소득을 제외한 이자, 배당, 임대료, 주식·부동산 매매차익, 상속·증여, 연금 수익까지 모두 불로소득 범주에 들어간다. 은퇴한 고령층이나 실업자, 미성년자 역시 노동 외적인 불로소득에 의지해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유독 ‘아파트 매매차익'과 ‘상속·증여’만을 콕 집어 불로소득이라 비난한다. 전형적인 이중잣대이자 내로남불이다.
아파트 가격 급등은 불로소득이고, 주가 급등은 투자소득인가. 정부가 육성하는 자본시장이라서, 혹은 소액 투자자가 많아서 주식 차익은 '불로소득'이 아니라는 것인가. ‘텐베거(Ten Bagger, 원금 대비 10배 이상 수익률을 기록한 주식)’는 그저 대박이지 불로소득이 아니란 말인가. 아파트 매입 역시 자본을 거는 리스크 투자다. 더욱이 아파트는 자본과 노동력이 집약된 산물로서, 노력 없이 오르는 지가(地價), 주가(株價)와는 궤를 달리한다.
아파트 가격 상승은 ‘돈 풀기’와 시장 수·급의 산물
현대 주류 경제학은 가치란 노동량이 아니라 소비자의 주관적 만족도(효용)와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아파트 가격 상승은 현대 경제학이 증명하듯 통화량 증가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그리고 입지에 대한 주관적 선호도가 결합된 결과다. 특히 정권의 무분별한 ‘돈 풀기(인플레이션)’야말로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리는 가장 큰 동력이었다.
결국 공급을 막아둔 채 돈을 풀어 물가를 올린 정부가, 집값이 뛰자 가만히 살고 있던 주민들을 ‘불로소득 독점자’로 몰아세운다. 팔아도, 팔지 않아도 세금으로 뺏겠다는 정치적 수사가 분노와 갈등을 키우고 있다.
‘불로소득’ 공식 통계 용어 아니다
현대 경제학 어디에도 ‘불로소득’이라는 감정적·자극적 표현을 공식 통계 용어로 쓰지 않는다. 학계와 세법은 ‘자본소득(Capital Income)’이나 ‘자본이득(Capital Gain)’, ‘양도소득’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불로소득은 오직 정치적·이념적 선동의 무대에 내세우는 언어일 뿐이다.
부자의 재산을 불로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몰수하고 공유화하겠다는 포퓰리즘이 득세할수록 경제는 서서히 골병이 든다. 자본과 공장의 엑소더스(탈출)가 심화되고, 부동산·건설 시장이 얼어붙으며, 자산은 해외로 도피한다. 또 기업과 개인의 투자 의욕을 꺾어버린다.
이제는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부를 창출한 이들이 내는 막대한 세금 덕분에 복지 혜택이 유지된다는 상생의 관점이 필요하다. 그들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아 빼앗으려 든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빈곤의 늪으로 추락할 뿐이다.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내로남불식 인식의 밑바닥에는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시기심과 현실을 왜곡하는 '불로소득'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이 자리 잡고 있다. 부정적이고 징벌적인 언어를 남발할수록 분열의 골은 깊어진다. 이제라도 선동의 언어를 걷어내고 시장의 이성을 회복해야 할 때다.
황상석 글로벌이코노믹 수석 전문위원 h1234@g-enews.com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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