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건설업계에서는 가뜩이나 공사비 급등과 인건비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노조 관련 갈등까지 다시 커질 경우 현장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공기 지연에 따른 손실을 우려한 하도급업체들이 부당한 요구가 있더라도 이를 거절하기 쉽지 않은 현장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도 직접 상황 파악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4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건설현장 노조의 불법행위와 업무방해로 건설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게시물을 공유하며 “노동부 장관에게 건설현장의 불법행위 가능성에 대해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다만 노조 활동을 곧바로 불법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정당한 노동 3권 범위 내 권리 행사인지, 불법·부당한 행위인지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서 가려야 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있다면 노동부에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건폭’ 단속 뒤 줄었던 월례비 정권 바뀌자 재등장
건설업계가 이번 대통령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 현장에서 다시 월례비와 조합원 채용 요구 등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워크레인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기사가 정식 임금과 별도로 건설현장에서 받는 돈이다. 실제 비용은 주로 철근콘크리트 등 하도급업체가 부담한다.
과거에는 원활한 작업 진행이나 추가 작업 등에 대한 대가라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지급됐지만, 월례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작업 속도를 늦추거나 작업 협조를 거부한다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건설현장의 대표적인 부당 관행으로 지목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건설현장의 금품 요구와 채용 강요, 공사 방해 등을 집중 단속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건설현장의 조직적인 불법행위를 ‘건폭’으로 규정하고 검찰과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에 강력 대응을 주문했다.
당시 정부 실태조사에서는 타워크레인 조종사 438명이 월례비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으며, 수취액 상위 20%인 88명의 연평균 수취액은 약 9500만원에 달했다.
이후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진행되면서 건설업계에서는 월례비와 채용 강요가 상당 부분 줄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토교통부도 범정부 단속 이후 건설현장의 불법·부당행위가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 건설업계에서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월례비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지방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일부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월 300만원에 별도의 공정별 추가 비용까지 요구하면서 현장 업체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의 아파트 현장에서는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매달 350만원가량의 월례비를 지급하는 사례도 전해졌다.
문제는 건설사가 노조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데 있다. 타워크레인 작업이 늦어지면 철근과 콘크리트, 골조 등 후속 공정이 함께 지연될 수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월례비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현장에서 요구를 거절했을 때 정상적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라며 “공정이 지연됐을 때 발생하는 손해가 훨씬 크다 보니 현장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우리 조합원 써라”…채용·장비 갈등도 현장 부담
이미지 확대보기노조원 채용과 장비 사용을 둘러싼 갈등 역시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지난 4월 충남 천안의 한 개발현장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각각 차량을 동원해 소속 조합원 채용과 장비 사용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인근 아산지역에서도 올해 1~3월 조합원 채용 등을 요구하는 건설현장 집회가 99건 신청된 것으로 파악됐다.
건설업계에서는 특정 노조 소속 근로자 채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집회뿐 아니라 안전·환경 등과 관련한 각종 민원이 이어지면서 현장 운영에 부담을 주는 사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여러 노조가 동시에 자신들의 조합원을 채용해 달라고 요구할 경우 건설사가 어느 한쪽의 요구를 들어주는 순간 또 다른 노조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현장의 고민이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는 보장해야 하지만 채용이나 장비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세워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견·중소 건설사와 전문건설업체일수록 부담은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 법무·노무 조직을 통해 대응할 수 있지만, 하도급업체는 현장 공정을 맞추는 것이 급선무인 만큼 노조와의 분쟁을 장기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정당한 노조 활동과 불법행위 명확히 구분해야”
건설업계는 이번 대통령 지시를 계기로 건설현장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 원칙이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가 요구하는 것은 노조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권 행사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업무방해 등을 분명하게 구분해달라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이후 처벌하기 보다 노조의 불법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신고 이후 노조와의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실제 피해가 있어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이 앞서 지난 3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노동 현안을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양대 노총 위원장과 사회적 대화와 메가프로젝트 노동 현안, 정년 연장 등을 논의하며 노동계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특히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 논의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대통령의 건설현장 점검 지시는 노동계와의 대화를 확대하더라도 불법·부당행위에 대해서는 별도로 들여다보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다만 월례비를 비롯한 건설현장의 노사 갈등을 일률적으로 노조의 불법행위로 보는 데 대해서는 노동계의 반론도 있다. 건설노조는 과거 월례비가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한 추가 작업이나 위험 작업 등에 대한 대가로 형성된 관행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노조원 채용 문제 역시 노조 측에서는 조합원에 대한 고용 차별을 막기 위한 활동이라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결국 향후 관건은 노동부가 현장 점검을 통해 정상적인 단체교섭과 노동 3권에 따른 활동, 금품 강요·채용 강요·업무방해 등 불법행위의 경계를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하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노조의 부당한 요구로 인해 공기 지연까지 겹칠 경우 그 비용이 원청과 하도급업체를 넘어 분양가와 입주 지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 건설업계는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 금융비용 증가로 이미 공사비 부담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라며 “여기에 현장 갈등으로 공사 기간까지 늘어나면 비용 부담은 원청이나 하도급업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분양가 상승이나 입주 지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는 충분히 보호하되 현장에서 힘의 우위를 이용한 금품이나 채용 요구, 업무방해 등에 대해서는 정권과 관계없이 일관된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