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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10% 만드는 싱가포르…AI 붐에 투자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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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10% 만드는 싱가포르…AI 붐에 투자 확대

싱가포르, AI 반도체에 승부수…세계 칩 10% 생산
VSMC 78억달러 공장 개장…반도체 GDP 7%, 국토·인력·미중 갈등은 성장 제약
지난 2023년 9월 12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 있는 미국 반도체업체 글로벌파운드리의 신설 반도체 공장 클린룸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3년 9월 12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 있는 미국 반도체업체 글로벌파운드리의 신설 반도체 공장 클린룸 모습. 사진=로이터

글로 무역·금융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싱가포르가 인공지능(AI) 붐을 발판으로 글로벌 반도체 제조업에서 존재감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미 세계 반도체의 10%와 반도체 제조장비의 20%를 생산하고 있으며 반도체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7%를 차지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싱가포르가 AI 수요 증가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계기로 반도체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제한된 국토와 높은 비용, 인력 부족, 미·중 갈등이 성장의 제약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29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싱가포르가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으며 사실상 국토 규모가 가장 큰 제약이라고 밝혔다.

웡 총리는 지난달 싱가포르의 여러 작은 섬을 합쳐 대규모 간척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첨단 제조업을 포함한 차세대 산업을 지원해 “향후 50년의 싱가포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78억달러 반도체 공장 개장…2공장도 검토

싱가포르 반도체 투자 확대를 상징하는 최근 사례는 비전파워 반도체 제조 회사(VSMC)다.

대만 뱅가드국제반도체와 네덜란드 NXP반도체가 설립한 합작사인 VSMC는 전날 싱가포르에서 78억달러(약 10조6000억원)를 투입한 반도체 공장을 개장했다.

류팡 VSMC 회장은 개장식에서 “높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두 번째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경제는 올해 반도체를 비롯해 의료기기, 항공우주 부품, 특수화학 등 첨단 제조업의 성장에 힘입어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AI 투자 붐이 현지 반도체업체에 호재로 작용했다.

싱가포르 글로벌파운드리의 탄유콩 아시아태평양 제조 총괄은 “싱가포르는 새롭게 부상하는 성장 분야의 확고한 거점이 되는 데 매우 잘해왔다”며 “AI가 급성장하고 있고 싱가포르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10개 가운데 1개를 만들고 있다. 다만 최첨단 반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보다 낮다.

반도체 제조장비에서는 세계 생산량의 약 5분의 1을 담당한다.

반도체산업이 싱가포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7%에 달한다.

◇전자제품 수출 132% 급증…AI가 제조업 끌어올려

AI와 첨단 제조업 호황은 싱가포르 수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디스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올해 상반기 무역 실적은 2010년 이후 가장 강했다. 이후 두 달 동안 경제 성장세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달 기준 전자제품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 급증했다.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서버랙 등이 포함된 개인용 컴퓨터 관련 출하량은 같은 기간 238% 늘었다.

글로벌 반도체업체들의 투자도 몰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반도체 분야에서 235억달러(약 31조9000억원)가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마이크론, 인피니언, 실트로닉, UMC 등이 싱가포르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도 지난 6월 5억달러(약 6788억원)를 투입한 캠퍼스를 개장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싱가포르 공장에서 연간 125만장의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며 현지 직원 43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생산 제품은 주로 대중적인 전자제품과 데이터센터에 사용된다. 싱가포르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가운데 자동차에 들어가는 비중도 최대 40%에 이른다.

탄 총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에 공장을 둔 반도체업체들이 공급망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추가 생산거점을 찾으면서 싱가포르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시아 투자를 고려하는 누구에게나 싱가포르는 적합한 곳”이라고 말했다.

◇미국 조사에 미·중 사이 압박까지

반도체산업의 성장은 지정학적 위험도 함께 키우고 있다.

탄 총괄은 반도체산업이 점차 “안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싱가포르를 포함한 여러 국가의 구조적인 제조 과잉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에는 싱가포르의 반도체와 전자장비 산업도 포함됐다.

미국 측은 싱가포르의 반도체 공급망 무역흑자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싱가포르산 제품에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미국과의 교역에서 자국이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중국·동남아 교역 전문가 앤젤라 트리토는 “싱가포르는 갈수록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첨단 미국산 반도체가 싱가포르를 거쳐 중국으로 밀반출되지 않도록 통제를 강화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트리토는 싱가포르가 미국의 수출통제를 명확히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동시에 중국을 매우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땅·인력 부족…말레이시아와 비용 경쟁

FT에 따르면 싱가포르 반도체산업의 또 다른 구조적인 한계는 높은 비용과 인력 부족이다.

인구 약 600만명의 싱가포르는 해외 인력 유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높은 임금으로 주변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처럼 첨단 제조업을 육성하는 주변 국가보다 비용을 낮추기 어렵다는 약점도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국경 바로 건너편에 있는 말레이시아 조호르주로 제조업 투자가 이동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조호르는 토지와 인건비가 싱가포르보다 저렴하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조호르 지역을 중심으로 특별경제구역도 출범시켰다.

싱가포르 전체 면적은 영국 그레이터런던의 약 절반에 불과해 산업용 토지 부족은 오랜 과제다.

싱가포르 정부가 여러 작은 섬을 합쳐 새로운 대규모 산업용지를 조성하려는 것도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장기 전략이다.

웡 총리는 이 계획에 대해 “여러 정부 임기에 걸쳐 자원과 계획,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며 “그것이 장기 계획의 의미”라고 말했다.

AI 붐과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등에 업은 싱가포르가 세계 반도체 제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더 확대하려 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국토와 인력, 비용 문제뿐 아니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복합적인 제약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