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 김정화의 전통염색이야기(53)] 할 말 많으나 말하지 않으리
늙은 누렁소의 잔등처럼 놀놀한 잔털이 솔솔 했던 겨울 산이 털갈이를 하고 있다.상수리나무가 많은 먼 산은 겨우내 회갈색이었다가 이즈음엔 가무래한 보랏빛을 띤다.
산에서 내려와 강둑에 서면 누른 갈대 옆에 선 떡 버들잔잎이 유황색을 맛나게 먹고 있다. 마당의 잔디는 수염 송송한 사춘기 소년이 발그레한 볼을 한 앞집 소녀를 만난 듯 흙 담장에게 부끄럼을 타기 시작해서 파리한 녹미를 띤다.
색의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새봄은 사람이 가만히 서있자 하여도 바람이, 빛이, 기운이 온천지 만물을 춤추게 만든다.
이삿짐을 싸고 풀고 하기를 꼬박 두 달.
베가 담긴 보따리들을 풀다 싸다 제풀에 지쳤다.
죄다 버리고 땅 끝까지 도망가 버리고 싶을 만큼 많고 많다.
한평생 이리 많이 어지른 다면 그 죄 또한 용서 못할 일이라 자책도 한다.
김정화 전통염색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