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의 모노그램 가방을 벚꽃과 체리 패턴으로 꾸민 무라카미 다카시, 키치한 무늬가 가득히 프린트 된 스텔라 매카트니의 드레스를 탄생시킨 제프 쿤스 등이 그 예이다. 협업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미술 작품에 영감을 얻고 그 자체를 브랜드의 콘셉트로 내걸기도 한다. 돌체 앤 가바나는 이탈리아 남부 도시인 시칠리아의 문화와 이탈리아 중세 미술 작품에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라다와 질샌더 역시 마크 로스코의 강렬하고 감각적인 색상에 영감을 받은 옷들을 선보인 적이 있다.
미술관이나 특정한 미술 전시를 후원하는 컬처 스폰서 프로그램(Culture Sponsor Program)을 통해 미술과 가까워지는 브랜드들도 있다. 2013년 크리스찬 디올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메인 스폰서가 된 적이 있다. 무슈 디올은 실제 23살의 나이에 갤러리를 열어 다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며 예술적인 삶을 살았는데 이러한 창시자의 가치관이 지금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있게 한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의 그것과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셀린느 역시 모마(MoMA)에서 열리는 독일 아티스트 이사 겐즈켄(Isa Genzken)의 전시회를 후원한 적이 있다. 이사 겐즈켄의 독특하고 과감한 작품세계가 셀린느의 브랜드 컨셉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디올의 경우 2012년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인상주의 작품들과 실제 19세기 디올의 드레스 및 다양한 의복들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를 주최하여 프랑스 패션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굳히기도 했다.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미술관을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 10월, 루이비통은 파리 아클리마타시옹 공원 내에 루이비통 미술관, ‘창조를 위한 루이비통 재단(The Louis Vuitton Foundation for Creation)’을 열었다. 루이비통, 펜디, 쇼메 등 60개의 유명 브랜드를 소유한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이미 상당한 미술 애호가로 정평이 나있다. 이제 누구든 그의 수많은 현대 미술 컬렉션을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멋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찌, 이브생로랑 등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커링(Kering) 그룹 역시 베네치아에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와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두 미술관을 설립했다. 소장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매장 자체를 전시장의 형태로 만들거나 패션쇼나 론칭쇼를 전시회처럼 기획하는 경우도 많다.
이 외에도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31억 원을 지원한 펜디, 밀라노에 재단을 만들어 세계적 예술가들의 전시를 기획해온 프라다, 다양한 미술 전시 뿐 아니라 신진 아티스트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현대미술재단을 운영하는 까르띠에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예술과 손잡으며 문화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흔히 ‘명품(名品)’이라 불리는 제품을 생산하는 고급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오랜 역사와 전통, 예술성을 강조하며 ‘명품’을 벗어나 하나의 ‘예술’이 되고자 한다. 다양한 형태로 미술과 손을 잡고 각자의 브랜드에 문화·예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와 미술의 만남! 이것은 때로는 디자이너의 영감을 돋우는 에너지이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확실한 마케팅 전략이다. 패션을 만드는 예술, 예술을 만드는 패션…. 이 흥미로운 관계가 또 어떻게 발전될지 기대해보자.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