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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미디어텍, 구글·메타 계약 지연에 ASIC 사업 '중대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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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미디어텍, 구글·메타 계약 지연에 ASIC 사업 '중대 기로'

경쟁사 압박·기술 난관에 메타 2나노 칩 수주 불투명
구글 계약마저 표류…2026년 매출 전망 40% 급감
미디어텍이 구글, 메타 등 빅테크와의 주문형 반도체(ASIC) 계약 난항으로 사업 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디어텍이 구글, 메타 등 빅테크와의 주문형 반도체(ASIC) 계약 난항으로 사업 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다. 사진=로이터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강자 미디어텍의 주문형 반도체(ASIC) 사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기대를 모았던 메타, 구글 같은 빅테크와의 대규모 계약이 경쟁 심화와 개발 지연이라는 암초를 만나 좌초될 위기에 처하면서 회사의 차세대 성장 동력 확보 전략에 발목이 잡혔다. 2026년 이후의 폭발적 성장을 자신했던 미디어텍의 장밋빛 전망이 심각한 불확실성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2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와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미디어텍은 메타의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수주 경쟁과 구글과의 핵심 ASIC 계약 과정에서 상당한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미디어텍의 2026년과 2027년 매출 전망까지 직접 위협받고 있다.

'캐시카우' 빅테크 계약 줄줄이 '경고등'


위기의 진앙은 메타다. 미디어텍은 코드명 '아르케(Arke)'로 알려진 메타의 2나노 공정 기반 ASIC 칩 수주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텍은 자사 강점을 살려 해당 칩을 비용 효율이 높은 AI 추론 칩으로 설계했고, 시장에서는 미디어텍의 수주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근 전황이 급변했다. ASIC 시장의 전통 강자인 브로드컴과 마블이 차세대 계약을 따내려고 공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두 기업은 고성능 컴퓨팅 분야에서 오랜 기간 기술력과 신뢰성을 쌓아온 저력 있는 경쟁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로젝트 내부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내부 관계자들은 "새로운 기술 난관이 발생했으며, 특히 고성능 컴퓨팅 ASIC 분야에서 미디어텍의 경험 부족이 프로젝트 진척을 가로막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 유력했던 메타의 주문 확보가 현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강자에서 맞춤형 AI ASIC 설계 기업으로 변신을 서두르는 미디어텍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또 다른 핵심 축인 구글과의 ASIC 계약 역시 빨간불이 켜졌다. 칩 설계의 마지막 단계인 '테이프아웃(tape-out)'이 여러 차례 지연을 거듭하며 계약 자체가 표류하고 있다. 최근에는 테이프아웃 일정이 최소 10월 이후로 또다시 연기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지연은 양산 일정에 직접 타격을 준다.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양산이 2026년 중반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해, 해당 연도의 ASIC 매출 규모 축소는 불가피하다. 당초 미디어텍은 2026년 ASIC 관련 사업에서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세웠으나, 현재로서는 6억 달러(약 8400억 원) 달성도 불투명하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 매출이 2027년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전체 성장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공급망 분석가들은 "구글과의 ASIC 협력은 생산 물량 자체가 막대해 성공리에 완수하면 미디어텍에 엄청난 매출 증대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 구글의 다른 프로젝트들과 비교해 설계 수정이 잦고 진행 속도가 더딘 점을 생각할 때, 양사의 파트너십은 여전히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라고 덧붙였다.

기술력 강화로 위기 돌파…2027년 반등 노린다


잇따른 악재에도 미디어텍은 AI ASIC으로의 전환을 서두르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모바일 SoC 영역을 넘어 맞춤형 AI ASIC 설계 역량과 패키징 기술을 내재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실제로 미디어텍은 지난 '2025년 IEEE VLSI 심포지엄'에서 3나노와 2나노급 선진 공정과 고속 신호 송수신 기술 'SerDes'를 활용한 고성능 칩 설계 기술을 발표하며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복합 패키징(CPO, CPC)과 고속 인터커넥션 구현 등 최첨단 공정 대응력을 높이며 구글 TPU, 엔비디아 DGX 프로젝트 같은 클라우드 AI 칩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려 하고 있다.

잇따른 계약 지연과 경쟁 격화는 미디어텍이 ASIC 시장에서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안정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확장하는 브로드컴 같은 미국 경쟁사들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엔지니어 자원 부족, 고비용 구조, 고객사의 반복되는 요구사항 수정 등 내외부의 난제들이 겹치면서 단기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과의 계약은 미디어텍에 더욱 절실해졌다. 구글의 ASIC 생산 규모는 엔비디아나 AMD와 견줄 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클라우드 강자인 아마존웹서비스(AWS)조차 아직 구글 수준의 ASIC 물량을 발주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글 계약은 미디어텍의 단기 성장을 이끌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미디어텍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ASIC 시장의 핵심 공급사로 발돋움하려면 구글과의 계약을 성공리에 마무리 짓는 것이 전략상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물론 단기 목표 달성은 험난하지만, 2027년 이후 기술 성숙도와 사업 확장에 따른 빠른 회복과 성장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