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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은혁, 음악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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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은혁, 음악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다

[나의 신작 연대기(74)] 2025년 제45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주목할 예술가’ 부문 수상자, 피아니스트 임은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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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콘서트홀 첫 데뷔 콘서트(2024.05.29)
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 쉬듯, 임은혁은 음악으로 우주를 거닐어야 했다. 2024년 5월 29일, 임은혁은 협연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로 데뷔하며 예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잘하기보단 살아있고 싶다. 지금은 음악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지만, 음악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본능적 부름으로 그의 영혼은 음악으로 우주를 거닌다. 오는 7월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를 주제로 피아노 독주회를 연다.

임은혁(LIM EUNHYUK, 林誾爀)은 인덕원초, 대안중, 안양외고를 거치며 성장했고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를 졸업한 공학도였다. 그는 졸업 후 사업을 하였으나 두 차례의 암 수술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린 시절의 꿈인 음악의 길로 돌아서게 했다. 그의 음악적 행보는 단기간에 눈부신 성취를 낳았다. 데뷔 협연 이후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폴란드에서의 협연과 이탈리아 독주로 이어졌다. 음악 전공자도 벅찬 단독협연을 비전공자로서 해냈다.

임은혁은 강렬하고 거친 표현력으로 내면의 극단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에게 음악은 무아의 경지인 트랜스(Trance) 상태를 보여주는 수단이다. 그는 연주자나 작곡가, 작품의 존재가 드러나는 단계를 넘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인간 본연의 명상 상태만이 남는 트랜스적 공명(Resonance)의 단계를 추구한다. 그의 사유하는 미학은 건반을 매개로 자기 자신과 청중을 초월적 경험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자기소멸에 이르는 수행에 가깝다.

임은혁의 시선은 ‘편한 감정은 진실을 회피한다’라고 하면서 늘 ‘심연’과 ‘소외’를 향해 있다. 그는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 조현병 화가 프란츠 폴의 작품에서 자기파괴를 통한 강인한 생명 의지의 역설을 읽어낸다. 영화 ‘디어헌터’나 ‘보이체크’ 등을 독해하며, 우리가 외면해 온 시대와 감정, 사람들을 직시한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비극 ‘펜테질리아’도 영감 원(源)이 되었다. 그에게 “문학은 사람의 심지를 올곧게 하고, 음악은 사람의 심지를 흔들어 놓았다.”
양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연주(2024.06.27)이미지 확대보기
양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연주(2024.06.27)
경희대 평화의전당 연주(2025.04.12).이미지 확대보기
경희대 평화의전당 연주(2025.04.12).
이탈리아 아스콜리피체노 시립극장 독주(2025.08.01)이미지 확대보기
이탈리아 아스콜리피체노 시립극장 독주(2025.08.01)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음악대학교 콘서트홀 협연(2025.08.08)이미지 확대보기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음악대학교 콘서트홀 협연(2025.08.08)
조지 거슈윈 피아노 협주곡 연주(2025.11.19 )이미지 확대보기
조지 거슈윈 피아노 협주곡 연주(2025.11.19 )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2번 연주(2025.11.19)이미지 확대보기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2번 연주(2025.11.19)

임은혁에게 ‘펜테질리아’만큼 논리와 전개 없이 파괴적 감정만으로 심지를 뒤흔들며 교향곡 같은 경험을 준 작품은 없었다. 그에게 예술은 심연을 정조준한 응시 훈련이며 속이 먼저 튀어나와 토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어둡고 강렬한 예술적 자양분은 그의 연주에 깊은 서사성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2025년 제45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주목할 예술가’ 부문 수상과 제18회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음악저널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주목할 예술가, 독보적인 신진 피아니스트 임은혁의 음악 세계에서 구스타프 말러는 존경의 거대 산맥이다. 그에게 음악은 소리의 떨림만이 아님을 알려준 것은 말러 교향곡 9번이었다. 그는 좋은 음악은 ‘소리의 어울림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기쁘건 슬프건 영적 체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애환과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처절하게 벗겨내는 말러의 음악은 그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자 위안이었다.

임은혁의 스승들은 한양대 교양과목 ‘재즈의 역사’ 시간에 만나 음악적 사유의 길을 터준 동지 친구 아버지와 같은 김진묵, 신입생 때 친구로 만났지만 이제 스승이 되어 비약적 실력 향상과 건반 앞의 겸손을 가르친 피아노 달인 김인영, 암으로 어둡던 시절 영혼의 나침반을 건넨 영혼의 등불 나비회 회장 박선영이 있다. 이제 임은혁은 ‘충만하고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이들을 나에게 이음 한 것은 우주가 말하고자 하는 필연적 메시지일 것’이라 믿으며 그들에게 받은 믿음과 사랑을 주변에 나누고자 한다.

임은혁은 ‘극한을 향하여’(Gershwin & Prokofiev, 2025년 11월 19일)를 넘어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다. 그의 예술적 사명은 빛이 닿지 않는 그 어디든 비추어야 하며, 늘 ‘을(乙)’과 함께 한다. 그의 빛이 닿지 않은 곳은 잊힌 작곡가들의 작품부터 시작해, 외면당하는 은밀한 감정, 소외당한 이들까지로 확장한다. 사유 없는 피아노 연주는 나무상자를 두드리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일갈하는 그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임은혁의 꿈은 임종 직전까지도 음악을 하며, 가장 낮은 곳으로 가 한 사람이라도 더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음악이 때로 그에게 상처를 주고 그가 음악을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올지라도, 그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로 끝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음악이 아니었으면 난 끔찍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음악이 그에게 다가와 준 것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바뀔 사람들이 많다. 그는 그런 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소망은, 그의 예술이 개인의 성취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보듬는 사회적 소명임을 보여준다.

대학생 시절 블루스 밴드이미지 확대보기
대학생 시절 블루스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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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슈게이징 락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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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말러의 마지막 작곡 별장(2015.08.05 말러 여행 때)이미지 확대보기
말러의 마지막 작곡 별장(2015.08.05 말러 여행 때)
말러가 머물렀던 마을 토블라흐(2015.08.04)이미지 확대보기
말러가 머물렀던 마을 토블라흐(2015.08.04)
말러 묘비에 놓고온 편지와 꽃(2015.08.08)이미지 확대보기
말러 묘비에 놓고온 편지와 꽃(2015.08.08)

임은혁은 호불호를 명확히 안다. 어떤 작품 선정에 확신만 있다. 그래서 매 순간이 진심이다. 음악은 수단일 뿐이며 트랜스 상태 자체를 보여주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에게 연주의 단계는 총 3단계가 있다. 첫째, 연주자 기억에 남는 연주, 둘째, 작곡가와 작품이 기억에 남는 연주, 셋째, 연주자 작곡가 작품 등 그 어떤 것도 기억에 남기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명상 상태만이 남아 트랜스적 경험을 공명하는 연주 단계가 있다. 그는 마지막 단계를 추구한다.

임은혁은 2024년에 와이비아르떼 온라인콩쿠르 아마추어부 1위, 서울아트 아마추어 콩쿠르 청년부 1위, 서울클래식음악협회 콩쿠르 비전공일반부 대상, 제1회 SC Bright 프레스티지 마스터스 콩쿠르 일반부 피아노 1등, 제8회 국제쇼팽애비뉴 콩쿠르 (1위 없는) 2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2025년에는 제18회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음악저널상 수상, 제45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주목할예술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노력이 서서히 진가를 발휘하는 중이다.

임은혁에게 행운의 연주회는 2024년 5월, 롯데콘서트홀 무대에서였다. 외국 흥행사들이 명함을 건네주었다.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목표로 정했던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협연할 수 있었고, 2025년 8월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2025년 11월 19일(수)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대망의 협연을 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과 더불어 목표로 정했던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 초연 100주년’을 맞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그의 꿈은 무르익고 있다. 건투를 빈다.

단독협연을 위하여 임은혁이 그린 그림이미지 확대보기
단독협연을 위하여 임은혁이 그린 그림
임은혁(피아니스트)이미지 확대보기
임은혁(피아니스트)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