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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금리 대란... 케빈워시의 착각과 채권 자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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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금리 대란... 케빈워시의 착각과 채권 자경단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법과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법천지에서 보안관을 대신해 총을 차고 말을 타며 질서를 바로잡던 이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자경단(Vigilantes)'이다. 마을의 규율을 깨뜨리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법자가 나타나면 자경단은 어김없이 나타나 가혹한 제재를 가했다. 자경단이 있었기에 혼동의 시절에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스스로를 지키는 자경단의 정신은 오늘날 위대한 미국을 만드는 동량인 셈이다.

이 서부극의 당찬 주역들은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 채권자경단이란 이름으로 월가에 나타난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빚을 늘려 재정을 낭비하고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방치하며 통화가치를 훼손할 때, 이들은 국채를 무차별 투매하여 금리를 폭등시키는 방식으로 정책 입안자들에게 가혹한 응징을 가한다. 월가의 전설적인 이코노미스트 에드 야데니(Ed Yardeni)는 이들을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번에 그들이 겨눈 총구는 단순히 워싱턴의 정치권을 넘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흔들고 통화정책의 기본 원리를 훼손하려 든 연방준비제도(Fed)의 수뇌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은 지금 거대한 채권 발작의 충격파에 휩싸여 있다. 미국 국채금리가 연일 연고점을 갈아치우며 수직 상승하자 뉴욕 증시는 패닉에 빠졌고, 신흥국 통화는 급락하며, 한계기업들의 신용 위험은 한계수위로 치솟고 있다. 월가와 각국 중앙은행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이 거대한 '시장의 반란'을 촉발한 원인은 명백하다. 인플레이션의 불길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상황에서 정치적 논리에 휘둘려 완화적 태도를 취한 중앙은행의 치명적 오판, 그리고 천문학적인 빚을 쌓아 올리면서도 절제를 잊어버린 미국 재정의 도덕적 해이가 부른 필연적 파국이다.

채권은 만기까지 정해진 이자를 받는 금융상품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화폐 가치가 떨어지거나, 정부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국채를 마구 찍어내면 기존 채권의 실질 가치는 급격히 훼손된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파멸적 손실을 방어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시장에 집단적으로 내던진다. 채권 매도가 쏟아지면 채권 가격은 폭락하고,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금리는 천장을 뚫고 치솟는다.국채금리의 급등은 곧바로 실물경제에 치명상을 입힌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기업 대출금리가 일제히 뛰어오르고, 정부가 감당해야 할 국채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가 재정을 마비시킨다.
잠자고 있던 채권 자경단이 다시 나서게 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첫째, 미국 국가부채 40조 달러 돌파와 재정의 한계 파탄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총부채는 마침내 40조 달러라는 미증유의 수치를 넘어섰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124%에 도달했다. 1년 동안 국채 이자를 갚는 데만 1조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혈세가 투입되며, 이는 이미 미국의 연간 단일 국방 예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빚을 내서 빚 이자를 돌려막는 재정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둘째는 중동 분쟁의 확산과 끈질긴 인플레이션의 부활이다.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적 군사 충돌이 장기화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90달러, 100달러를 넘나들며 에너지발 공급 쇼크를 재연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구조적 물가 상승 압력까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은 쉽사리 꺾이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맹수가 살아 숨 쉬는 한, 장기 채권을 쥐고 있는 투자자는 실질 원금을 갉아먹히는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셌째 채권 시장의 수급 대참사와 민간 자금의 싹쓸이도 문제다.불어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미국 재무부는 매달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채를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 반면 AI 인프라 확충에 나선 빅테크 기업들마저 시장에서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해 시중의 안전자산 유동성을 빨아들이고 있다. 공급은 턱없이 넘쳐나는데 수요는 분산되니, 채권 가격의 폭락과 금리 급등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이 와중에 중앙은행이 저지른 결정적 실책이 채권 자경단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압력과 경기 침체 우려에 영합하여 기준금리 인상을 회피하거나 조기 인하를 시사한 태도가 화근이었다. 단기 기준금리를 통제해 시중금리를 전반적으로 낮추겠다는 통화당국의 계산은 빗나갔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책무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장은 "중앙은행이 화폐가치 방어를 포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자, 투자자들은 장기 국채에 대해 훨씬 더 높은 위험 보상, 즉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장기 국채의 투매로 이어졌고, 단기 금리는 억눌려 있는 상태에서 10년물, 30년물 등 장기 국채금리만 가파르게 치솟는 전형적인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 현상을 촉발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억제함으로써 전체 차입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오독한 '치명적 착각'이었다. 단기 금리를 동결하거나 낮추려 든 대가로 장기 금리가 폭등하면서 모기지 금리와 기업 대출금리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고, 실물 경제는 유례없는 신용 긴축의 고통에 직면하게 되었다.
역사의 거울을 비추어 보면 오늘의 사태는 기시감을 자아낸다. 1970년대 아서 번즈(Arthur Burns) 전 연준 의장은 행정부의 재선 압박에 굴복해 오일쇼크로 물가가 치솟는 와중에도 금리를 섣부르게 낮추고 완화적 기조를 유지했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공존하는 파멸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졌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물가와의 전쟁을 회피한 대가가 달러화의 패권 훼손과 국민경제의 붕괴였던 것이다. 이 재앙의 고리를 끊어낸 인물이 1979년 취임한 폴 볼커(Paul Volcker)였다. 볼커는 백악관의 압력과 살해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준금리를 연 20%대까지 끌어올리는 극약처방을 단행했다.

지금 채권 자경단이 요구하는 것은 명확하다. 아서 번즈의 유약하고 비겁한 타협을 버리고, 폴 볼커의 서슬 퍼런 결기와 정공법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금리를 억지로 억눌러 국채금리를 안정시키겠다는 발상은 불이 난 건물에 기름을 들이부으며 진화를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미국 국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경단의 반란은 단순한 시장의 변덕이나 투기 세력의 장난이 아니다. 무책임한 국가 재정과 신뢰를 잃은 통화정책을 향해 시장이 날리는 최후통첩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