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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움직이는 원인 추적…행복은 삶의 궁극적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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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움직이는 원인 추적…행복은 삶의 궁극적 목적

[북 카페에서 띄우는 인문학 편지(13)]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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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야, 벌써 무더운 여름이 되었구나. 이번 기말고사는 중요한 시험이라고 들었는데 시험을 잘 치르지 못했다니 안타깝구나. 이제 수능시험도 얼마 남지 않아 어떻게 대학을 가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지. 그런데 시험을 못 봤다니 선생님도 마음이 아프다. 학교 내신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으니 교과전형으로 좋은 대학을 진학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그루가 정시와 논술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너무 실망하지 말고 정시와 논술로 준비해 보렴. 무엇보다 그루가 인문학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고 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그동안 편지와 만남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 거야. 아마도 그런 모든 것들이 그루가 논술 시험에 응시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거고. 그러니 그루가 자신감을 가지고 논술에 도전해 보렴. 선생님도 도와줄게.

선생님은 그루가 조금 더 멀리 보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당장 지금의 기말고사만을 고민하게 되면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 한다는 거지. 맞아. 그루는 이번에 기말고사를 망쳤어. 그런데 기말고사를 잘 치러야 하는 이유가 뭐야? 단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기말고사를 잘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루는 우물 안 개구리와 마찬가지야. 인생을 더 멀리 보고 해석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해.

선생님은 이 부분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소개하고 싶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고 플라톤이 죽은 후 마케도니아 왕실의 초청을 받아 그 당시 열 네 살이었던 알렉산더의 스승이 되기도 했지. 알렉산더는 나중에 뛰어난 정복자가 된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에서 여러 가지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무엇보다 오늘은 그루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얘기를 꺼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소개하고 싶구나.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이 움직이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원인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마지막 궁극적 원인을 알게 되는데 그것을 '제1원인'이라고 했어. 그에 의하면 제1원인은 신(God)이기도 하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삶의 목적도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 선생님이 방금 전에 그루에게 했던 얘기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기말고사를 잘 봐야 할 이유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야. 왜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는 거지? 좋은 대학 가려고. 좋은 대학을 왜 가려고 하는 거지? 좋은 회사에 취업하려고. 좋은 회사에는 왜 취업하려고 하는 거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없는 제1원인에 도달하게 된다는 거야.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는 삶의 궁극적 목적인 제1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이 그루에게 기말고사만 바라보고 있으면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된다고 했어. 이런 식으로 더 멀리 삶의 궁극적 원인을 찾다보면 단지 기말고사에 매이지 않고 인생의 큰 목적을 세우고 매진할 수 있지. 그루는 삶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해? 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거지? 아마도 그루는 대답하기 쉽지 않을 거야.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가 삶의 궁극적 원인, 즉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했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왜 살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살아. 그루는 어때? 기말고사 성적으로는 고민해도 왜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어?

그루에게 물어보자. 그루는 지금 행복해? 기말고사를 망쳐버렸는데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사람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단순한 쾌락으로 보지는 않았어. 그는 행복이란 어떤 물질적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지. 그리고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덕(德, arete)을 동반하고 이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생각했지. 말하자면 행복이란 올바른 방식의 행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결국 이것은 이성의 작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덕인 중용이야. 중용은 너무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야. 예를 들어 용기는 만용과 비겁의 중용이고, 절제는 금욕과 방탕의 중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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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방식으로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 선생님은 의문이야.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을 아는 것은 중요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러나 선생님은 그루가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자는 거야. 아까 선생님이 말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이는 원인이 존재한다고 믿었지. 그는 이 세계가 끊임없이 운동하는 이유는 궁극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믿었어. 씨앗을 생각해 보자. 씨앗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어. 우리는 봄에 씨앗을 심어보면 싹이 나는지 알 수 있지. 씨앗은 일종의 가능성의 형태로 있어. 씨앗의 최종적인 목적은 나무가 되는 거야. 만약 씨앗이 다 커서 큰 나무가 되었다면 가능성을 실현한 거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렇게 모든 만물들은 가능성에서 현실성으로 나아가는 상태에 있다는 거야.

그루 자신을 생각해봐. 그루도 어떤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있잖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행복이라고 말했지만 이것 말고 그루에게 물어보자.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은 맞지만, 그루에게 주어진 독특한 사명을 알 수 있을까? 씨앗은 나무가 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면, 그루가 자라서 궁극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모습은 무엇일까? 아마 그루는 윤리와 사상을 공부하면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몰라. 그루가 학교에서 공부한 대로 말한다면, 주어진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은 자아실현이야. 물론 이것도 보는 이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사람은 나무의 씨앗처럼 주어진 잠재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삶을 살고 있고 지금 그루도 그렇게 살고 있어.
씨앗은 분명히 나무가 되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그러나 사람은? 각각의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난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거야. 밭을 갈고 있는 소를 생각해 봐. 소는 농부에 의해 부림을 당하고 있어. 때로는 일하기 싫을 때고 있고 너무 고통스러워 쉬고 싶을 때도 있을 거야. 그러나 농부는 무자비하게 소에게 채찍질을 하며 밭을 갈아. 그루야, 소는 자신의 지능으로 자기가 왜 그렇게 부림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아마도 인간은 소와 비슷한지도 몰라. 왜 기말고사를 망쳐서 마음이 아픈지, 왜 끊임없이 삶의 어려 문제로 씨름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야.

우리 사회를 생각해보자. 학교에서, 가정에서, 대중매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가지라고 강조하는지 몰라. 선생님도 당연히 꿈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동력이 되고 인생의 궁극적 방향을 결정해 주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어렸을 때 정한 꿈 혹은 비전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실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에 선생님이 그루에게 인생을 멀리 보라고 말한 적이 있지? 어때? 인생을 멀리 보려고 생각하니 이 또한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지? 선생님이 생각할 때, 그루는 무엇보다 인생을 멀리 보고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해. 그리고 그루는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음 선생님에게 편지해. 이것은 다음 편지의 과제니까 꼭 실천해 옮겨봐. 이것은 꼭 실천해야 할 정신의 운동이야. 특히 이렇게 시험을 망칠 때는 더욱 이 운동을 게을리 하면 안 돼.

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그루에게 하나의 정신 운동을 소개할게. 이 운동은 방금 말했던 운동과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운동이야. 인생의 목적지를 정했다면 이제는 목적지를 향해 눈을 감아. 혹은 목적지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려야 해. 아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러나 선생님을 믿고 따라와 봐. 인생은 너무 먼 곳을 바라보게 되면 현실을 잊게 되고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버려. 꿈을 갖고 비전을 갖는 것도 좋지만 계속 그곳에 머물면 과대망상증 환자가 될 수도 있어. 모든 것은 신기루일 뿐이야. 현실을 직시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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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는 조정경기를 본적이 있어? 조정경기를 보면 목적지가 등 뒤에 있어. 만약 조정경기 선수가 목적지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보고 싶어 등을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반드시 경기에 지고 말거야.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마치 이와 같아. 원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 삶의 궁극적 목적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해. 하지만 등을 돌려 목표지점을 보려고 하면 목표가 보이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초조, 불안, 조바심만 보이는 거지. 아마 지금 그루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미래가 불안하니까 더욱 안절부절 못하는 거야. 이럴 때일수록 그루가 꼭 해야 할 일은 반드시 목표지점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거야. 그리고 조정경기 선수가 목표지점으로부터 등을 돌려 현재의 하나하나의 노를 젓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그루도 결과에는 신경 쓰지 말고 매일 주어진 공부에서 노 젓는 일에 집중하렴.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먼 훗날에 보면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루야, 인생이 대단한 것이 아니야. 단지 인생은 대단한 일을 위한 기회일 뿐이야. 그리고 그 삶에 현장에서 그루가 작은 하나의 사명을 완성한다면 바로 그것이 영원을 얻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렴. 그리고 언제나 그루 옆에서 돕고 있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하기 바란다. 그럼 잘 지내고 다음의 만남을 기대하며 이만 편지를 줄인다. 안녕.

2015년 7월 15일
달빛로에서 터기쌤 이창우(그루터기 100년 학교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