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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자신의 삶을 나비 날개 짓에 은유한 환상적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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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자신의 삶을 나비 날개 짓에 은유한 환상적 리얼리즘

[무용리뷰] 최원선 안무의 『나비계곡Ⅱ-시간비행, Butterfly ValleyⅡ-Time F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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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나비계곡Ⅱ-시간비행‘
지난 9월 1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최원선(본댄스컴퍼니 예술감독) 안무의 『나비계곡Ⅱ-시간비행』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일탈과 여유를 꿈꾸고자하는 자들의 꿈’의 상징인 ‘나비’를 중심 대상으로 삼는다. 나비의 모습과 유선(流線)을 따라 전개된 춤은 노자의 ‘나비’를 연상시키고, 자연에 몰입된 인간의 순수로의 여정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삶에서 ‘멈춤의 미학’을 통해 추억의 파편들로 비행을 떠나고, 이와 함께 얽혀있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적 기제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연결,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안무가는 유교주의 문화 속에 본능적 감정들을 억제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 음습한 모습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이면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에 솔직하게 다가간다.
자연을 즐기면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한 탐구는 프롤로그, 1. ‘하얀 정적’, 2. ‘시간의 파편’(‘정(情)’, ‘애가(哀歌, 愛歌)’, ‘적막의 노(努)’), 3. ‘존재의 집’, 4. ‘바람의 시선’, 5. ‘하얀 정적’,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전통적 춤사위를 기반으로 창작 무용의 동시대적 현대성을 견지한 『나비계곡Ⅱ-시간비행』의 우수성은 창의성, 구성, 연기력의 탁월성에서 나온다.

프롤로그, 배음(背音)으로 깔리는 거문고 현의 가벼운 떨림과 강렬한 해금 연주의 비명적 메시지의 음색, 수평으로 서서히 나타나는 무용수 최원선과 나비는 동일시된다. 경쾌한 구음을 비롯한 전통을 입은 사운드는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나비 짓을 강조하고 영상은 부지런히 나비 짓을 투사한다. 확장된 영상은 무대 바닥에도 다양한 나비를 풀어 놓는다. 강제가 없는 자유 계곡에서 구가하는 전설의 서(序)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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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나비계곡Ⅱ-시간비행‘
‘하얀 정적’, 구음의 점강(漸强)을 따라 크로스하며 자신의 영역으로 스쳐가는 여인들 역시 나비들이다. 안견의 ‘몽유도원’에 견주어지는 공간에서 춤이 추어진다. 백색과 진청이 이루는 공간은 자유를 구가하는 미지의 해방 공간이다. 노자의 ‘던짐’, ‘멈춤’, 느림을 용차(用借)한 영상의 청정과 분위기의 청량을 취한 중후한 경쾌함은 블루 판타지를 백색으로 몰아온다.

‘시간의 파편’:
1) ‘정(情)’, 채워야 할 미래에 대한 수식이 없는 등받이 없는 사각 나무의자에 마주보고 앉은 남녀, 현대적 감각의 설정 씬은 거친 세상을 이겨내야만 하는 한 쌍의 여린 연인들을 상징한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줄기를 타고, 그들은 사랑의 푸른 꿈을 담아 사랑에 관한 이인무를 격정적으로 추어낸다. 객석으로 전달되는 사랑의 느낌은 디테일한 연기와 공감을 이룬다.

2) ‘애가(哀歌, 愛歌)’, 깊은 고뇌는 심호흡으로 슬픔을 삼키게 만들고, 슬픔은 소음을 낳고, 심중(心中)의 남겨진 사랑은 소리, 빛, 춤으로 빚은 아름다운 비주얼을 남긴다. 상처가 있어야 진주가 되는 것처럼, 사랑이 남긴 춤은 숙성의 춤으로 전환된다. 슬픔을 삼킨 검정 나비를 상징하는 검정 롱스커트의 네 여인, 다양한 디딤의 진법과 춤사위로 극기의 춤을 추어낸다.

3) ‘적막의 노(努)’, 여인의 슬픔이 침화되고, 성숙의 단계를 넘어, 상실의 의미를 깨달을 때면 멀리 사라졌던 사랑의 파편들이 유리알의 파열로 번진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유리알 유희’를 즐겼던 아픔의 기억들이 피어난다. 우주에서의 유영(遊泳)같은 나비의 변태를 위한 순간들이다. 사랑의 아픔이 썰물로 사라지고, 거미줄 같이 쌓인 세상을 살아가는 일상이 지속된다.
‘존재의 집’, 무대의 중앙, 수평으로 단이 올라오고 그 위에 아름다운 변태의 과정을 겪은 나비(최원선)가 나타난다. 단 위에 자신을 뽐내며 나비 짓이 이루어진다. 부드러운 웨이브로 날갯짓 하는 가운데 울려 퍼지는 주발소리, 징의 음(音) 등 자신의 삶이 소리와 영상으로 스쳐간다. 빛, 색상의 전이, 파동으로 고고한 나비가 등장하는 환상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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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나비계곡Ⅱ-시간비행‘
‘바람의 시선’, 단 서서히 내려가고, 그 앞으로 나비들(여인들)이 등장한다. 수나비들(사내들)도 등장한다. 1장 나비의 숲 장면에 등장한 등 파인 살색 롱스커트의 연인들, 곡선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살린 치마바지 패턴의 무채색 의상과 ‘파’, ‘츠’ 같은 원시음의 거친 호흡 소리가 지속되고, 두드림 소리에 비틀고, 서고, 회전하며 춤춘다. 계곡의 신비와 그 비밀을 간직할 의무를 진 채, 나비무리들의 품격의 춤으로 화평의 메시지를 남긴다.

‘하얀 정적’, 시원의 나비계곡, 그 한 가운데를 뚫고 등장하는 나비, 해금의 청아함을 동반한다. 모든 나비들이 그들의 현재를 자랑스러워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즐기며, 의연함을 춤춘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들어 올림, 치고 회전, 급정지, 기마자세 등의 춤을 선보인다. 조명은 완전 백색, 나비계곡의 ‘시간비행’의 결어(結語)인 백지 채색의 주인공은 자신임을 알린다.

에필로그, 무리의 춤이 끝나고, 그들은 다시 백색계곡으로 돌아간다. 홀로 남은 나비(최원선)는 해탈의 춤을 춘다. 떨림과 울림으로 마무리되는 나비들의 비행, 시간의 간극 속에 사랑의 추억, 기다림에 대한 회한 위로 뿌려지는 꽃잎들, 바닥엔 추억의 앙금처럼 꽃잎들이 즐비하다. 나비가 되어 본 최원선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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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나비계곡Ⅱ-시간비행‘
안무가는 나비계곡의 시간비행을 통해 삶의 소용돌이 속에 홀연히 날아든 나비 한 마리를 따라 잠시 멈춰선 자신의 감정에 솔직히 마주서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고, 관객들도 그녀가 나비에게 건넨 사연을 담은 춤이라는 감성적 예술표현에 동참, 혼탁한 현실을 필터링한 우아한 기품의 작품에서 삶이 따뜻해지는 힐링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최원선은 문화인류학의 한 분류인 한국 춤의 소중한 가치를 존중해왔다. 그녀의 창작 춤은 우리 춤의 미학적 가치와 대중성을 견지하고 있다. 그녀의 안무작 『나비계곡Ⅱ-시간비행』은 자신의 삶을 나비의 날개 짓에 은유한 환상적 리얼리즘의 실체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써, 신비적 표현기법으로 한국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성과물이다.
출연(이승연,홍정남,박영신,박윤화,김지영,이제성,노동환,최원선)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