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플레이스테이션 바탕, 글로벌 콘텐츠 시장 진출
애플과 경쟁 실패·가전제품 분야 약화로 '소니 쇼크' 일으키기도
애플과 경쟁 실패·가전제품 분야 약화로 '소니 쇼크' 일으키기도
이미지 확대보기소니 그룹은 "이데이 전 회장이 간 부전으로 2일 별세, 가까운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장례식이 치뤄졌다"면서 "회사 차원의 추도식을 곧 진행될 예정"이라고 7일 발표했다.
고 이데이 노부유키 전 회장은 지난 1937년 11월 22일 생이다. 아버지가 교수로 근무하던 와세다 대학교 정치·경제학부 출신으로, 대학 시절부터 소니의 인턴으로 근무했다. 1960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니 코퍼레이션에 입사했으며 소니 그룹 창립 멤버였던 이부카 마사루 전 회장의 눈에 들어 그의 사위가 됐다.
소니 그룹에서 오디오 사업부장·홈 비디오 사업 부사장 등을 역임했던 이데이 전 회장은 1989년 이사직을 거쳐 1994년 상무이사로 승진, 이듬해 소니 코퍼레이션 사장을 맡았다. 1998년에는 대표이사 직을 맡게 됐으며, 이듬해 전임 회장이었던 오가 노리오에 의해 5대 소니 그룹 회장을 겸직하게 됐다.
게임 사업 확장에도 주력했다. 그가 상무이사로 승진한 시점 1994년에 처음 세상에 공개된 '플레이스테이션'은 지금까지도 세계 3대 콘솔기기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회장으로 재임한 해인 1999년 소니에서 최초의 1인칭 3D 그래픽 MMORPG '에버퀘스트'를 선보여 가장 앞장선 게임 기술을 보유한 리딩 기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데이 전 회장이 대표이사로 재임 중이던 1998년, 소니 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연간 영업이익인 5257억엔(약 5조원)을 기록했다. 해당 기록이 갱신된 것은 20년 후인 2017년(연 영업이익 7348억엔)이었다.
디지털 사업의 공로를 인정 받은 이데이 전 회장은 2000년부터 일본 정부가 세운 'IT 전략 위원회'의 의장직을 겸임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일본 전역의 광대역 네트워크 계획·구축을 주도했다.
콘텐츠·디지털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데이 전 회장이었으나 로이터 통신은 그에 대해 "MP3 시대로의 전환을 읽지 못하고 음악 시장에서 애플에게 주도권을 내어준 리더"라며 "TV 등 가전 제품 부문에서도 그의 재임 시기 한국 등 해외 경쟁업체에게 추월을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가 회장으로 재임하던 2003년, 소니 측에서 1분기 영업손실 1000억엔 이상을 거뒀다고 발표한 후 하루만에 주가가 27% 폭락하는 '소니 쇼크'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2년 후 이데이 회장은 회사의 경영악화 책임을 인정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회장직을 그만둔 직후 이데이 전 회장은 소니 그룹 최고 자문위원회장으로 재임하기도 했으나 2012년 이마저 사임했다. 그는 2006년 경영 컨설팅 회사 '퀀텀 리프 코퍼레이션'을 설립, 후배 경영인들을 육성했으며 바이두·제너럴 모터스·레노버 등의 사외 이사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그룹 대표이사는 "이데이 전 회장은 1998년부터 7년 동안 소니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공헌했다"며 "특히 인터넷의 영향을 미리 예측, 소니 전반을 디지털 기업으로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선견지명을 보유했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어 "이데이 전 회장의 족적은 오늘날 소니 그룹의 경영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며 "소니 그룹에 헤아릴 수 없는 공헌을 하고 업적을 세운 이데이 전 회장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부디 그가 평안히 쉬기를 기도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