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은 전체 GDP 가운데 15%를 국제원조에 의지하고 있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지진이 발생했던 4월 25일, 네팔 대통령과 현지 정부 주요 인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국제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출국한 상태였다. 따라서 지진이 발생했던 당시에 네팔 현지는 무정부 상태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원조에 참여한 국가 중 국가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약속했던 인도와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행동이 빨랐던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평을 듣는다. 네팔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각각 JICA와 KOICA라는 국제협력단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어, 정보가 비교적 빨랐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5월 6일 정오 기준으로 네팔 전국에는 한국인 민간단체 51개 기관이 약 470만 달러 규모로 식량, 의료, 주거, 위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다양한 단체가 들어오고 긴급 구호가 끝나가기 시작하자, 네팔 현지 주민들, 네팔 정부, 그리고 각국 NGO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첫째, 지진 직후 현지인들이 원하는 것과 NGO가 지원한 물품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필요로 하지 않는 물품을 과다하게 지원하면서, 국제 원조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네팔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둘째, 통합되지 않은 다수의 각국 NGO들이 상호간의 교류나 통계 없이 활동하면서, 지원이 중복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한달 여가 지나도록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마을이 발생했다. 교통 상황이 좋지 않은 네팔에서 ‘네팔 대지진에 참여했다’라는 마케팅식 지원은 현지 주민들에게 받는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태도를 갖게 했다.
마지막으로, 네팔은 2007년 왕정이 폐지되고 작년에야 처음으로 대통령 총 선거를 치렀던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다. NGO들의 활동이 정부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가 되자, 정부가 NGO의 활동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모 단체의 긴급 구호 지역에서의 선교 사건이 네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이러한 네팔 정부의 비관적인 태도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네팔 주민에 대한 이해가 없이 NGO들이 활동하기 편한 지역에서의 관리되지 않는 지원은 네팔 사람들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다.
가장 먼저, 지진 피해 및 네팔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일부 NGO들이 일단 네팔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지진 초기의 ‘긴급 구호’ 단계에는 의사, 전기 기술자 등 일반 인력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2-3주가 지난 뒤 ‘복구 지원’ 단계에서는 외국인 의사들이 철수하고, 현지의 복구를 가능한 한 현지인들의 힘으로 가능하게 하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는 지진 피해와 현지 상황에 대한 정보가 가장 중요한데, 작은 규모의 NGO들은 이러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일반적으로 산간 지역의 지진 피해 상황에서 부족한 것은 식량이 아니라 식수다. 식량은 긴급 구호가 끝난 뒤 복구 지원 단계에서 매몰된 식량을 다시 찾으면 충분히 수급이 가능하다. 식수의 경우, 매몰된 동물 사체 등으로 인하여 지하수가 오염되면 수급이 불가능해지고, 전염병이 돌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한국 NGO들은 일단 식량 수급에 치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지진 최대의 피해 지역인 신두팔촉에는 현지 전체 주민들이 1년 간 사용 가능한 양식이 비축되어 있다. 전부 NGO 및 국제 원조로 받은 것이다. 전기는 5월 20일경에나 복구되기 시작했고, 식수 역시 아직까지 불안한 상태이다. 가장 필요했던 것은 식량이 아니라 발전기와 정수 시설이었다.

하지만 네팔에 처음 들어왔거나, 소규모로 움직이는 경우에는 이러한 관리가 불가능했다. 특히 산간 지역에서 이러한 문제가 생기자 네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우리에게 적선하듯이 준다.’거나, ‘참치나 소기름이 들어간 음식 등 네팔 문화에 어긋나는 음식을 적선하고 있다.’라는 등의 불만이 생겨났다.
둘째, 네팔에서 활동해 본 경험이 없거나 네팔에 대한 정보가 적은 소규모 NGO 단체까지 전부 네팔로 집중되면서, 네팔 현지에서는 NGO 단체의 활동에 과부하가 걸렸다. 초기 긴급 구호 단계에서는 당연히 의사와 병원이 부족했지만, 1-2주 이후에는 상황이 정리되면서 NGO들이 가져온 의약품으로 인하여 현지 병원과 의사들이 고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5월 중순 네팔 정부는 의료 지원이 아닌 현금 지원을 부탁한다는 성명을 냈다. 과도하게 공급된 의약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의약품뿐 아니라, 네팔 국내에서 수급 가능한 물건들도 공급과 수요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지진 전부터 네팔에서 활동했던 단체들의 경우 필요한 물품은 식량이 아니라 텐트와 태양열 전지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가능한 루트를 통해 이를 선 주문했다. 하지만 차후에 도착한 업체들이 이러한 물품의 빠른 수급을 원하자, 네팔 공급처에서는 가격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은 향후 네팔의 시장 자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또한, 네팔의 교통에 익숙하지 않았던 NGO들의 활동 역시 문제가 됐다. 지진 피해 지역이 북부 산간인 고르카와 신두팔촉 지역으로 알려지자, NGO 활동이 집중되면서 이 지역은 NGO 단체들의 홍보의 장이 되었다. 산간 도로와 중고 차량이 중심인 네팔의 교통은 500km를 이동하는 데 20시간 이상이 걸리고, 정부 소유로 운영할 수 있는 헬기는 전국에 딱 6대가 전부이다. 상황이 이러자, 소규모 NGO의 경우 도착할 수 있는 지역까지만 도달한 뒤 중간에 물품을 배급해버리는 상황이 생겼다. 이러한 물자가 향후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역시 전혀 알 수 없다. 초기 국제 NGO가 들어오기 전, 네팔에서 활동하는 NGO들은 네팔 정부와 일단 조치를 취한 뒤 보고를 하기로 협의했으나, NGO들이 밀려들어와 무조건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협의 역시 물거품이 되었다.
반대로, 수도 카트만두에서 가까운 사쿠 및 짱구나라연 지역은 100여명의 사상자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또한, 수도 빈민촌에 거주하고 있던 네팔 최하 계층들은 기존에 받던 지원까지 끊어졌다. 가진 게 없었으니 지진으로 잃을 것도 없었고, 이는 NGO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네팔 주민들은 ‘피해가 커야 원조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배워버렸다.

이러한 정부 조치가 시작된 이유 중 하나로, 네팔 정부 역시 현재 자신들의 재난이 NGO 홍보의 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꼽힌다. 또한, 이들이 네팔의 재건보다는 자신들의 활동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지원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 지원금을 정부의 입맛대로 유용할 것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실제로 네팔 지진 2주 전 중동 예멘에서는 내전이 발생하여 200만 명의 이주민이 생겼고, 2주 뒤 중남미 파푸아 뉴기니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와 에베레스트를 가졌으며, 아시아와 유럽 모두에서 접근성이 좋고, 특히 이번 지진으로 눈에 띄는 피해를 입은 네팔만큼 매력적인 마케팅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지 않게 마케팅 대상이 된 네팔의 주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 자신들의 문화 유산은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이기에 기다리면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는 사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지역이 불필요할 만큼 많은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지원 역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네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 단순히 네팔 사람들이 약삭빠르고 실리에 밝기 때문일까. 전혀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지원금은 네팔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었음은 확실하다. 단지 부족한 정보와 지진 구호에 참여하고자 하는 무분별한 열정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 네팔 지진이 처음 났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일반 자원봉사의 경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설명하는 글이 인터넷에서 나돌았다. 이는 일반인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NGO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를 잊고 있었을 뿐이다.

정경진 urizia@hanmail.net 중국 청화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