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한보그룹 정태수 돈 받은 뇌물공화국 역사의 죄인들… ①김현철(김영삼 아들) ②홍인길 ③ 권노갑 ④김우석 ⑤ 이철수 ⑥ 우찬목 ⑦ 신광식

기사입력 : 2019-06-24 08:46 (최종수정 2019-06-2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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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태의 주역 정태수의 넷째 아들 정한근의 압송으로 한보그룹이 재조명되고 있다.

정태수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의 압송으로 한보그룹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은 2007년 해외로 도피했다. 아들 정보근은 아버지 정태수가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고 하지만 사망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정태수 회장은 1923년생이다. 살아 있다면 올해 97세이다.

한보그룹은 1997년 1월 부도가 났다. '한보사태'로 불리는 이 부정 비리는 당시 건국 후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이다. 한보그룹의 당시 부실 대출 규모가 무려 5조7000억여 원이었다.

정태수 총회장은 1990년부터 5조 원 규모의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건설부가 부지매립 허가를 9개월 만에 내주었고 통상산업부는 검증도 되지 않은 코렉스 공법의 채택을 적극 권유하기까지 했다. 철강업계에서는 한보의 경영능력으로는 이 프로젝트의 실행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었으나 정부 비호 속에 한보그룹은 1조 원 규모의 코렉스 설비를 도입하는 무리수를 뒀다.

한보철강의 대출은 1994년 산업은행으로부터 11억2900만 달러 외화를 대출받은 것을 시작으로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한보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투자비를 계속 지원했다. 한보그룹은 그 돈으로 18개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부도가 나면서 대출 부정이 확인됐다. 1997년 5월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한보철강에 집중 자금지원을 해 준 신광식 제일은행장, 우찬목 조흥은행장,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 등 은행장 7명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고 그 중 3명이 구속되었다. 또 신한국당 홍인길, 정재철, 황병태, 국민회의 권노갑 의원, 김우석 전 내무부 장관 등 5명이 소환되어 조사받고 뇌물수수죄로 구속되었다. 국회 청문회에서는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의 연루 의혹이 집중 추궁되기도 했다.

한보사태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몰고온 한 원인이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과 국정원 운영차장 김기섭도 결국 구속됐다.

정 총회장은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2년 형집행정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정태수는 또 다른 사건으로 2006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횡령)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항소하여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5월 2일 치료목적으로 일본으로 출국한 뒤 현재까지 해외 도피 중이다. 이 과정에서도 정관계 인물들의 비호설이 나왔다.

정태수 총회장은 해외도피 중이던 2008년 4째 며느리인 강릉의 영동대 학장인 김모 씨를 통해 대학을 원격 경영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했다. 자신이 도피중 머물고 있는 카자흐스탄에 해외 유학생 유치를 위한 지사를 설립토록 하는 등의 행위가 적발된 것이다. 이 대학 출신의 간호사 4명을 카자흐스탄까지 불러 개인적으로 고용해 간병을 받았던 것이 밝혀졌다.

정태수가 문제를 일으킨 당진제철소는 이후 현대그룹으로 넘어가 현대제철의 모태가 됐다.

정태수 사건 와중에 박석태 자살사건이 있었다. 1997년 한보 사태가 발생하면서 제일은행과의 불법대출이 논란에 휩싸였다. 박석태 상무는 청문회 증언에서 1995년 한보가 유원건설을 인수할 때 제일은행과 불법대출을 했다고 폭로한다. 박석태 상무는 그 직후 서울 망원동 자택에서 빨랫줄에 목을 매 숨졌다.


김재희 기자 tiger8280@g-enews.com 김재희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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