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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자네 같은 사람 더 없어? 두 명만 데리고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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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자네 같은 사람 더 없어? 두 명만 데리고 오지!”

휘몰아친 8개월간의 2개 신규공장 셋팅과 회장님 지시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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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전무)

    사무실로 반가운 전화가 왔다. "전무님! 지난 달에 한국에 들어와 무사히 출산하고 산후조리 중입니다. 늘 고마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연수과정에 들어와 연수동기와 결혼해 1년이 지난 시점이다. 본인과 출산한 딸도 건강하다는 것이다. "내가 고맙다. 열심히 사는 것 같구나. 남편도 잘 있지?"라며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중인 이현성 매니저(가명)의 근황을 들었다. 한국의 생활가구 회사인 'Z'사의 인도네시아 제조 공장에 취업해서 다니고 있다. 그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GYBM)'에 지난 2015년 8월에 인도네시아 1기생으로 지원했다. 현지 생활이 벌써 4년째이다. 자카르타에 취업하며 같은 연수 동기생과 결혼했다.

    "부하직원 35명에 두 개 공장을 넘나 든다고? 그러면, 직급은?" "매니저 입니다. 미국식 직급제도를 택해서 직급제도가 단순합니다. 직책은 물류부서 전체를 총괄하니 현지에 나와 있는 한국기업 기준으로 보면 부장급입니다" 입사 4년 만에 20년 경력 사원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매니저는 2016년 6월에 연수를 마치고 자카르타의 한국 물류회사에서 2년, 제조업체에서 1년 근무했으나 뭔지 모를 답답함이 있었다. 지인에게서 들은 구인소식은 한국 회사 'Z'사의 '물류'업무 책임자 자리였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자체 브랜드로 제품의 전량을 아마존과 월마트를 통해 판매를 하고 있는 회사였다. 지금은 직원 7000여 명에 한국인 매니저는 22명이다. 입사 합격 결정도 빨랐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었다. 처음 사무실을 들어가 보니 엄청난 일들이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물류업무는 고사하고 공장 세팅 업무가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당장 실어낼 주문 물량도 기다리고 있었다. 제품 주문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 동료와 인사도 제대로 나눌 시간이 없었다. 당장 필요한 직원 채용부터 했다. 공장에 세팅돼야 할 기계설비들도 챙기기 시작했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수입이 되니 허가서 준비와 검사, 항구 도착과 동시에 통관으로 이어졌다. 잠시의 방심도 허용이 안 됐다.기계를 하역하는 항구의 세관, 인도네시아 투자청(BKPM)도 방문하는 등 닥치는 대로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때로는 회사의 상사(上司)를 모시고 통역으로도 거들었다. 오랜 세월 인도네시아에서 비즈니스 하신 눈으로 "인도네이아어를 잘하네. 잘 배웠구먼" 하는 칭찬도 받았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새롭게 셋팅한 제조 공장만 2개였다. 이후 정상 업무체계로 돌아서며 뒤이은 엄청난 양의 원부자재가 들어오고, 완성품은 미국으로 실려나갔다. 뒤에 안 일이지만 인도네시아 진출 한인 기업 중 톱3 정도 물량이라고 한다. 모두가 이 매니저의 업무였다.

    그러는 사이에 부하직원도 40여 명으로 늘었다. 5개월 여가 지났다.

    본사에서 온 회장님께서 이 매니저에게 건네는 말씀이다. "자네같이 훈련된 사람 2명 정도 더 구할 수 없을까?" 더할 수 없는 최고의 칭찬으로 생각했다. 지난 4년간의 인도네시아 현지 적응의 고충들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그래서 바로 우리 연수원 팀장님께 전화해 GYBM 4기 후배 2명을 요청해서 지금 같이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매니저가 밝힌 소감이다.

    첫째, '뭐든지 부딪혀 보니 되더라'는 것이다. 스스로도 흠칫 놀라는 경우도 많았다. 해보지도 않고 위축되고 겁먹은 시절이 저 멀리 아련하다.

    둘째, 동남아 국가시스템의 낙후성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 한국에 있을 때, 연수를 받을 때 은근히 무시도 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니 그 후진성 때문에 나에게 기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인 관계자와 마음만 잘 통하면 오히려 더 적극 나서는 모습도 보았다.

    셋째, 그러자면 현지인들의 언어를 알고 정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GYBM연수를 받은 반둥공과대학(IBK)은 수하르토 대통령을 배출한 최고 대학으로 우리가 배운 현지어 교육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쓰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인정받고 2명의 후배와 같이 일하게 되니 김우중 회장님과 연수원장님, 대우의 멘토님, 연수 관계자 모두에게 작은 보답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가 인생의 최고 순간이었습니다'로 말을 맺었다.

    통화를 하면서 느낀 분위기는 세상 모든 것을 쥔 듯한 기개(氣槪)였다. 5년 전의 지원서를 찾아 보았다. 막연한 대학생활과 두 차례의 해외 어학연수를 거쳐도 앞길이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전공은 공무원 관련 분야, 수차례의 자격증도 답이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의 자화상 그대로였다. 4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 바뀐 것 없이 더 심각해지고 있지만…

    마무리 인사를 나눴다. "우리 과정에 참가하도록 적극 추천해 주신 아버지,어머니께도 꼭 감사드려라. 동기 와이프와 새로 태어난 딸내미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자"는 격려와 감사의 인사였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