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과 재계 등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사업가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서 껌을 팔면서 '롯데'라는 간판을 올리고 성장을 거듭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롯데그룹을 재계 5위 매출 83조 원의 대기업으로 만든 '롯데 신화'를 창조했다.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1973년 지하 3층 지상 38층 1000여 객실의 규모를 갖춘 동양 최대 특급호텔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을 개장했다. 1979년에는 롯데호텔서울 옆으로 롯데백화점을 열며 우리나라에 선진국형 백화점의 시작을 알렸다.
여기에 1989년에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 기록으로 남은 서울 잠심 롯데월드를 선보였다. 평화건업사(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 등을 인수하고 투자를 확대하며 롯데그룹의 사업 영역도 꾸준히 늘려 나갔다.
신 명예회장의 숙원 사업이던 서울 잠심 롯데월드타워도 빼놓을 수 없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관광입국을 이뤄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그룹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0년 11월 롯데월드타워 착공에 들어갔으며 마침내 2017년 4월 국내 최고층(123층, 555m) 건물을 탄생시켰다.
다만 독단적으로 전권을 휘두르는 '황제 경영'과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신 명예회장은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한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유지하는 폐쇄적인 지배구조로 황제 경영을 지속했으며 소유와 경영을 동일시 한 경영 방식은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중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은 신 명예회장의 전근대적인 경영 방식을 세상에 그대로 보여준 계기가 됐다. 일부 지분만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불투명 경영체제는 물론 '손가락 경영'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황재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soul3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