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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註解)' 꼼꼼히 달아야 학문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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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註解)' 꼼꼼히 달아야 학문이 발전한다"

서울대 안재원 교수, '로마의 문법학자들'에서 학문 행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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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주석은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으로 나와 있고, 주해는 '본문의 뜻을 주로 달아 알기 쉽게 풀이함'으로 되어 있다. 사실 국어사전의 뜻풀이로는 주석과 주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에서는 주석과 주해는 엄격하게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원문을 읽는 데 이해가 안 되는 낱말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은 주석인데 반해, 주해는 책과 책 속의 문장, 그리고 단어가 가진 역사적 맥락을 밝혀주는 작업이 주해다. 이런 점에서 동양고전이나 서양고전을 번역하는 데에는 반드시 주해가 따라야 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 학계는 주해는커녕 주석 작업도 대단히 소홀히 해왔다. 안재원 서울대인문학연구원 HK교수가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문명텍스트 총서로 펴낸 『로마의 문법학자들』은 서양고전에 대한 국내 최초의 주해서라고 할만하다.

안 교수는 "로마의 학문은 바로의 전통을 계승한 플라쿠스와 같은 문법학자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체계화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학문 서적을 저술하거나 번역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학문과 사상, 문화를 수입할 때 발생하는 언어 충돌을 해결해야 했다. 라틴어 문법을 정비해 라틴어로도 학술 용어와 술어들을 만들 수 있도록 언어적 기제와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문법학자들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번역작업이 땅 위 고구마 순을 따는 작업이라면 주해작업은 땅 속에 숨은 고구마를 캐내는 작업이라고 비유했다. 예컨대 플라톤이 한 말이 이전 호메로스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개념화가 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업이 주해라는 것이다.

원래 고전 자체는 문·사·철을 비롯한 모든 학문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작품이 갖는 문명사적 특징을 찾아주고 그 틀을 확립하는 과정이 바로 주해다. 분과학문 체제인 오늘날 학계 현실에 비춰 볼 때, 주해작업에 대한 관심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안 교수는 한 분야의 학자들을 양성하고자 할 때, 표준적 의견이 된 주해서를 번역해 놓으면, 후속세대들이 유학을 가지 않아도 그 시대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고 세계 학자들과 공동연구도 가능하기 때문에 주해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해가 끝나고야 서로 다른 해석들이 나올 수 있기에 '학문의 선진화'를 위해서 연구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주해방법으로 첫째 책과 관련된 역사를 밝혀주고, 둘째 책에 대한 당대 해석사(학자들의 이슈와 담론)를 정리해주고, 셋째, 고전에 얽혀 있는 학문이 다른 학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융합의 다리를 놔주고, 넷째 책속에 있는 내용과 방법론 등이 우리에게 수입된 수용사와 우리 연구의 발신이 가능한 수용가능성에 대해 말해주어야 한다고 소개했다.

이번 『로마의 문법학자들』은 수에토니우스의 이 전기 모음에 라틴어 원문과 문헌 전승에 대한 비판장치와 더불어 상세하고도 충실한 주해를 덧붙였다. 특히 책에 서술된 26명의 문법학자들은 대부분 그리스 노예 출신으로, 노예 신분이던 그리스 학자들의 교육과 번역이 바로 학문 발전에 기여한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