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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자 정은혜의 일생 역작 엮은 매혹적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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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자 정은혜의 일생 역작 엮은 매혹적 판타지

대전시립무용단 제57회 정기공연 『대전십무(大田十舞)』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춤비평가] 정은혜(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충남대 교수), 환상의 춤을 만들어내는 여인, 그녀의 안무작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늘 춤추게 만든다. 그녀의 일생의 역작이 단편 시리즈로 엮어진 매혹의 열편 춤은 정은혜의 내공과 저력을 보여주는 놀라운 판타지를 연출한다. 그녀는 창작무에 관한 한 우리 춤의 당당한 볼륨 업, 다양한 스펙트럼의 춤 활용 가능성 제시, 공명을 이끄는 춤의 격상, 과감한 예지적 예술성을 자신 있게 펼칠 수 있는 겸양지덕의 고수이다.

정은혜,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임무를 마무리하며 보여준 『대전십무』는 대전 거점 주변 지역의 풍습, 설화, 인물, 환경, 풍광에 걸친 소재로 대전의 본색과 미래 춤의 향방을 가늠케 만들고, 최상위 춤 예술로 격상시킨다. 그녀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창안한 열편의 춤은 대전 춤의 빛깔과 향을 각인시켰고, 강력한 울림으로 우리 춤의 미적 규범을 제시하였다. 그녀의 춤은 멀고도 가까운거리의 춤으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춤으로 확증된다.
▲『본향(本鄕)』(태초의빛을찾아서)
▲『본향(本鄕)』(태초의빛을찾아서)
들뜸이 아닌 묵직한 중량감으로 빼곡히 채워 넣은 디테일, 무게감을 실은 안정된 자세, 우리 춤의 바람직한 전범(典範)을 제시하는 자신감, 모든 가변의 역동성을 동원한 대전십무는 영상, 조명 테크닉, 사운드, 빛의 적절한 분배로 중원의 대하 춤 건재를 읽게 해 준다. 국립극장의 현대적 테크닉 선호로 그 역할을 대신 한 듯 한 이 작품은 이 무용단의 힘을 읽게 해준다. 그녀는 명작을 직조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의 안무가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글로 형용할 수 없는 찰나적 예술의 가치, 장르간 유기적 순환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공간의 아름다움이 내려앉은 열편의 작품들은 화두를 깨친 정은혜의 격정, 이면의 쓸쓸함,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깔려있다. ‘사이의 가치를 인정하는 작품들은 소통을 몰고 오고, 곧 바로 감동과 격정의 바람을 불러 온다. 흠결 없는 공연은 정은혜의 존재와 안무작들을 당분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체취가 남아있는 안무작 열편을 살펴본다.

▲『본향(本鄕)』(태초의빛을찾아서)
▲『본향(本鄕)』(태초의빛을찾아서)
본향(本鄕)(-태초의 빛을 찾아서): 남한의 정중앙 대전의 지정학적 위치와 문화를 생각해보는 도입부의 춤은 족보를 앞세운다. 대전은 족보의 고향이며, 전국에서 족보제작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한민족의 근원과 번영,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본향(本鄕)은 현대 창작춤의 정형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고, 빗소리로 사실감을 더하면서 시작된다. 영상과 사운드는 파장과 빛을 흡수하고 종이 내음, 묵향으로 무게감을 보여준다. 정은혜 춤의 정체성과 상징, 춤의 예형(藝型)이 족적(族籍), 전통에 기반함을 밝힌 작품이다.

▲『취금헌무』(박팽년과여인들,거문고가락에취하다)
▲『취금헌무』(박팽년과여인들,거문고가락에취하다)
▲『취금헌무』(박팽년과여인들,거문고가락에취하다)
▲『취금헌무』(박팽년과여인들,거문고가락에취하다)
취금헌무(박팽년과 여인들, 거문고 가락에 취하다): 거문고 가락 속에 선비로서의 박팽년, 사육신으로서의 박팽년의 지조와 숭고한 희생, 순천박씨 대 이음에 얽힌 여인들의 정한을 조화롭게 해석해낸 작품이다. 선비의 기개는 높고, 그를 기리는 향연(香煙)은 부각된다. 적색향로의 등장, 소복의 연인, 황토 빛 바닥이 상징하는 세월, 화평의 춤 속에 대나무가 배경 막에 뜬다. 마무리로 후손을 상징하는 아이 나타나며 향로는 사라진다. 우울한 현()속의 각오의 춤, 희생이 예술로 승화된 한민족 정신을 대변하는 희생과 지조의 춤이다.

▲『대전양반춤』(-양반이요,양반!대전양반이요!)
▲『대전양반춤』(-양반이요,양반!대전양반이요!)
▲『대전양반춤』(-양반이요,양반!대전양반이요!)
▲『대전양반춤』(-양반이요,양반!대전양반이요!)
대전 양반춤(-양반이요, 양반! 대전 양반이요!): 군무 확장의 일인자 정은혜가 벌이는 고품격 춤은 검정 갓끈과 저고리 끈, 하얀 도포 자락이 절묘한 색감 대비를 이루며 군무로 이루어진 한량춤의 깊이감을 느끼게 만든다. 전통 한량춤 바탕에 대전의 선비이야기를 더하여 풍자와 해학이 어우러진 양반춤으로 만든다. 칠인의 양반과 앉아서 책 읽는 양반 팔인이 벌이는 이 춤은 동참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춤힘과 품위로 시립무용단의 품위와 결부된다. 문화적 전통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이 춤은 양반의 예술적 동참과 형성자임을 보여준다.

▲『갑천,그리움』(-갑천의전설이한폭의수채화가된다.)
▲『갑천,그리움』(-갑천의전설이한폭의수채화가된다.)
▲『갑천,그리움』(-갑천의전설이한폭의수채화가된다.)
▲『갑천,그리움』(-갑천의전설이한폭의수채화가된다.)
갑천, 그리움(-갑천의 전설이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감동의 쓰나미를 몰고 온 이 작품은 대전의 젖줄인 갑천의 전설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과 서정으로 담아낸다. 피리가 인도한 그곳, 양반가의 여인, · 퇴장 시의 놀라운 조명 테크닉, 그리움을 불러내는 정은혜의 독특한 방식은 아리게 슬픈 모습들로 나타난다. 감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 얼굴에 고향이 비치기 때문이다. 하늘엔 반딧불이 날고, 여인들 그리움의 덩어리로 남는다. 여인 아홉, 무사 하나, 하얀 그리움을 남긴 채 무사는 떠나고, 갑천 그곳에 사랑이 있었다. 정은혜의 기본 춤 구상의 사심없는 구성과 모티브를 가늠케 하는 작품이다.
▲『바라춤』(–정토를부르는상생과해원의춤)
▲『바라춤』(–정토를부르는상생과해원의춤)
▲『바라춤』(–정토를부르는상생과해원의춤)
▲『바라춤』(–정토를부르는상생과해원의춤)
바라춤(정토를 부르는 상생과 해원의 춤): 장엄미사에 해당되는 엄숙함을 달고 시작된 이 춤은 백색 솔로가 강한 인상을 뿌린다. 느림의 미학과 강약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이십 여명에 달하는 군무는 압도적 연기로 백년 역사의 수운교 공양의식 중 해원을 풀어낸다. 수운교 바라춤 원형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 구성된 이 춤은 진엄한 구음과 풍경 울음이 깊이를 더한다. 흔적 없이 소멸의 기운만 남기고 흩어지는 한국식 만다라 춤은 연꽃의 인상으로 남는다. 우리 춤의 지루함을 걷어내는 기술적 방법론을 제시한 작품이다.

▲『한밭북춤』(science&drum천문과학과북(鼓,drum)의만남)
▲『한밭북춤』(science&drum천문과학과북(鼓,drum)의만남)
▲『한밭북춤』(science&drum천문과학과북(鼓,drum)의만남)
▲『한밭북춤』(science&drum천문과학과북(鼓,drum)의만남)
한밭북춤(_science & drum 천문과학과 북(,drum)의 만남.): 과학도시 대전의 이미지를 북놀음과 현대춤으로 융합시키는 흥겨운 판타지 <타고(打鼓) 퍼포먼스>는 희망의 입자들로 북의 대합주와 사운드와 빛의 순환을 보여준다. 망원경, 별이 등장하고 영상과 조명이 현대를 간질이며 신서사이즈와 조우한다. 행성으로 떠난 우주선과 상모의 대비는 현대의 어머니는 지울 수 없는 과거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춤 예술의 좌표설정이 무엇인지 모두에게 묻는다. 북춤의 예술적 결정판으로 타 북춤과 조화로운 비교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다.

▲『계족산판타지』(-계족산노을은사랑이다.)
▲『계족산판타지』(-계족산노을은사랑이다.)
▲『계족산판타지』(-계족산노을은사랑이다.)
▲『계족산판타지』(-계족산노을은사랑이다.)
계족산 판타지(-계족산 노을은 사랑이다.): 붉은 빛, 그 기운으로 대전팔경의 하나인 계족산 노을은 시적 서정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인연, 분홍 빛 연서에 담긴 남녀의 신비로운 만남 같은 해질 무렵의 풍경은 아린 황홀을 풀어낸다. 붉은 빛으로 감싼 열정적 사랑의 이인무는 한국 춤사위 속의 현대, 갈등 속에 새로운 원형을 만들어 가는 진지한 모습을 제시한다. 사랑과 자유의 뿌리를 계족산에 두고 칼러 필터를 끼고 바라보며, 계족산에서 있었던 회한의 정을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사색한 작품이다.

▲『호연재를그리다』('삶이란석자의시린칼이요,마음은한점등불')
▲『호연재를그리다』('삶이란석자의시린칼이요,마음은한점등불')
▲『호연재를그리다』('삶이란석자의시린칼이요,마음은한점등불')
▲『호연재를그리다』('삶이란석자의시린칼이요,마음은한점등불')
호연재를 그리다(-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이요, 마음은 한 점 등불’): 여인에서 어머니에 이르는 긴 흐름의 호연재는 긴 천으로 상징된다. 그녀는 대전의 시인으로 신사임당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여류시인이다. 어머니, , 제자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 이 작품의 재료는 현대적 몸짓이다. 베틀에 포착된 여인의 고뇌, 여인을 타고 시는 흘러가고, 아름다운 여인의 춤사위, 시절을 껴안은 여인은 천을 안고 눕는다.’ 이 시대 여인들이 운명적 현실을 극기해내는 모습과 여성성을 노련하게 현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한밭규수춤』(한밭벌규수님들봄나들이하셨다)
▲『한밭규수춤』(한밭벌규수님들봄나들이하셨다)
▲『한밭규수춤』(한밭벌규수님들봄나들이하셨다)
▲『한밭규수춤』(한밭벌규수님들봄나들이하셨다)
한밭규수춤(-한밭 벌 규수님들 봄나들이 하셨다): 하이키로 피리를 앞세우고 한밭벌 여인들 자태를 뽐내며 느린 여유로움으로 만춘을 만끽한다. 사위는 교태이며 발동작은 세묘(細描)이다. 개성이 돋보이는 춤은 원색의 강렬함과 자신의 영역을 확보한다. 정은혜의 나들이 방식은 기품과 생동감을 소지하고 퀼트 빛 서정으로 신명을 낚아낸다. 숨이 막힐 정도의 장엄의 가치 창출은 다양한 자료수집에서 오는 정수를 춤으로 한껏 고조시킨 결과이다. 시대적 풍습과 색채, 여인의 품격, 자연을 향유하는 우아한 기품을 보여준 작품이다.

▲『유성학춤』(유성설화의판타지!)
▲『유성학춤』(유성설화의판타지!)
▲『유성학춤』(유성설화의판타지!)
▲『유성학춤』(유성설화의판타지!)
유성학춤(유성설화의 판타지!): 정은혜 시대는 오고 있는가? 유성온천의 기원 설화에서 학춤이 그 대답이 될 수 있다. 고고하게 자신의 성()을 지켜온 그녀는 춤이 점점 감각적으로 변해가는 현대의 이 시점에서 서정적 판타지로 그 해답을 제시한다. ‘나무꾼과 선녀’, 선계(仙界)의 비경, 하늘을 나르는 학, 지상의 학, 현을 타는 학이 만드는 평화스런 세상의 이미지, 그런 어우러짐의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학무리들의 춤으로 그 뜻을 전달한다. 학의 고고한 상징 현대적 테크닉을 구사, 춤 교양의 함양이 희망임을 밝힌 작품이다.

정은혜, 그녀의 혜안은 자신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아티스트들을 알아본다는 점이다. 적소적시에 춤 연기자들을 배치하고, 뒷심을 발휘하게 만든다. 비주얼을 구상하고 대전의 힘을 만들어 내었다. 이런 가능성은 그녀가 어느 지역에서라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시킨 것이다. 그녀의 춤 짓에서 서정주의 긴 호흡과 끈끈함, 박목월의 서정과 배려심이 투영된다. 투사보다 더 센 힘이다. 중앙무대에서의 그녀의 다음 춤 인생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장석용 춤 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