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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쪽 풀, 영남은 청두에서 '남청색'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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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쪽 풀, 영남은 청두에서 '남청색' 얻어

[염장 김정화의 전통염색이야기(28)] 오방색(五方色)-청색(靑色)
[글로벌이코노믹=김정화 전통염색가] 청색은 오방정색으로 동방의 색이며, 서양 색채론의 바탕인 삼원색 중 하나다.

청색으로 여러 간색이 나올 수 있는데 황과 결합하여 녹색, 적과 결합하여 자색을 만든다.

청염(靑染)은 쪽(藍)으로만 가능하고 쪽염은 색이 잘 빠지지 않는다. 쪽은 제철의 생잎으로 한 생쪽 염, 쪽 풀을 우려 낸 염료에 잿물만 넣고 발효한 옥색염, 니람(泥藍: 조개로 만든 횟가루를 넣고 만든 진흙 상태로 농축시킨 염료)을 만들어 하는 농축 발효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렇게 다양한 쪽 염은 그 염색방법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어 재현이 쉽다.

힘이 많이 드는 니람 만들기와 긴 발효시간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어려워하는 쪽 염이지만 6‧25전쟁 이전만 해도 어지간한 살림집에서는 쪽물 치마와 쪽 이불을 사용했다. 쪽 염색법은 지역별,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나 니람과 질 좋은 잿물, 항아리 온도가 30도 가까이 유지되는 열대야가 계속되는 한여름이면 누구나 할 수가 있어서 대중성이 높다.
쪽 염은 잿물이 중요하다. 쪽 대나 콩 대, 명아주 대, 다북쑥 등을 태워서 그 재를 뜨거운 물로 내린 진한 잿물만 사용하면 색이 잘 인다. 잘 발효된 쪽물에 침염중인 베는 노랑색이지만 꺼내서 공기와 접하면 청색으로 곱게 발색된다. 지금 우리가 물들이는 쪽 풀은 여뀌 과에 속한 것으로 호남지역에서 많이 재배했다. 호남에서는 쪽 풀에서 남청색을 얻었고, 영남에서는 다른 종에 속하는 「청두」라는 풀에서 「잉물」이라는 남청색을 만들었다. 염료의 수량성은 청두가 훨씬 좋아서 적은 양으로도 진한 청보라 색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하나, 이제는 그 식물이 멸종되어 재현해볼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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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알칼리성인 쪽물은 무명, 삼베, 모시 등의 셀룰로오스 섬유나 이들을 합하여 교직으로 짠 아롱지 등에 많이 들였다. 제대로 발효된 쪽으로 물을 들이면 천이 모두 헤질 때까지 색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헹궈주지 않으면 가만히 두어도 탈·변색이 심하다. 이것을 막으려면 흐르는 물에 2∼3일 담가두어 잿물 성분을 완전히 빼주어야 한다.

독일에서는 오래전에 대청이라는 풀에서 색소를 분리하여 염색하기까지 30분에 마치는 속성법이 개발되었지만 일광견뢰도는 형편없다. 여타의 개량법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쪽 염을 선호하는 일본에서도 전통 발효법으로 물들이는 염장이 줄어들면서 전통발효 남염(藍染)을 정람(正藍)으로 따로 표시한다.

전통 쪽 발효법은 한 번에 익히기가 어렵다. 잿물의 농도, 염료의 비율, 발효조의 온도 등 발효를 위한 모든 조건이 맞아야 쪽물이 잘 발효되므로(이것을 쪽물이 일어난다 라고 함) 초보자들은 그 감(感)을 잡기가 힘들다. 김치나 식혜를 담그는 방법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맛을 제대로 내려면 정성을 다하여 반복하는 방법밖에 없다. 음식의 간을 볼 줄 알게 되면 비로소 맛을 낼 수 있듯 쪽 염도 간을 볼 수 있어야 제 색이 난다. 쪽 염은 숙련된 작업자의 감(感)과 정성과 솜씨의 결정판이다.

한편 우리말엔 푸르다, 파랗다의 색 영역이 굉장히 넓다. 푸른 풀밭, 푸른 창공, 파란 잔디, 파란 하늘, 파란 콩, 파란 바다, 포르스럼한 옥색, 포르스럼한 새싹잎 등 그걸 다 나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똑 같은 건 녹과 청을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일까 찾기도 묻기도 했으나 모두 글쎄 라고만 한다. 염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녹의 어미는 청이다. 옥, 청, 남으로 물들인 다음 황으로 물들이면 비로소 녹이 된다.

청의 농담에 따라 녹의 농담이 정해지니 뒤에 얹은 황이 대수가 아니다.

파랑색의 혈통주의는 여인이 시집을 가도 친정 성씨를 지키는 우리 습속을 그대로 닮았다. 말속에 이치 있고 물음 속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