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이동원은 성균관대 무용과(현대무용 전공)와 동 대학 공연예술학 협동과정 석·박사 과정을 거쳐 무용과 초빙교수로서 무용실기와 공연예술학 전반을 연구하고 있다. 아지드 현대무용단 수석 무용수, 원 댄스 프로젝트 그룹의 대표로서 융·복합적 특성이 강한 안무작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독특한 개념의 움직임 개발과 독창적 상상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억력 테스트』는 공연예술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다. 그는 타 장르(뮤지컬, 넌버벌 퍼포먼스, 연극, 영화)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2회 댄스 컬렉션’ 최우수상 수상, 2009년~201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영 아트 프론티어 AYAF’ 선정 이후 중국, 싱가포르, 일본 등 다양한 국내·외 무용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중국 광저우 댄스 페스티벌에서도 관찰되었던 이동원은 춤꾼 부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역동적이며, 창의적 소재의 춤들은 늘 파격을 불러왔다. 『다 잃어버리도록』, 『어떤 소리를 원하는가?』, 『일상을 위한 일상』, 『무엇을 바라보는가?』, 『그녀가 바라보는것』 등 그의 주요 안무작은 춤 기교의 우수성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는 집요함이 들어가 있다.
그의 작품은 주제에 따른 움직임 탐구, 즉흥적인 작용과 실험의 활용, 춤과 다른 매체 사이의 상호교류작용 등이 주요 특징으로 드러나며, 구성요소들 간의 상응으로써 실현해내고 있는 그의 예술 성향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타 장르와의 조화로운 크로스오버는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이동원만의 탄탄한 색채로 구축해나가고 있다.
『기억력 테스트』는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사물의 본질과 다를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 감각 인지에 따른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몸속에 내재된 감각 때문에 반응이 가능하다. 반응과 동시에 신체는 하나의 어떤 것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형태로 기억한다. 작품은 질문 형식을 띄며 촉발성 물질이 최초로 감각을 건드리게 되는 화두로 작용한다.
신체의 반응을 살피는 과학자처럼 감각의 반응과 동요, 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이 신체에 박히는 과정은 정제되지 않은 형태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질문들은 작품 전반에서 신체의 공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것(움직임, 소리, 이미지, 글)으로써 흩뿌려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체는 또 다른 경험의 인지 속으로 뒤섞이면서 새롭게 반응한다.
반응된 감각의 혼란은 또 다른 기억의 각인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결국 주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 최초의 순간으로 회귀하게 된다. 순환논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주목 해야 할 무용수의 몸은 현존의 결정체로 기능한다. 즉 재현의 표현 매체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증발됨과 동시에 박제되는 기억의 찰나를 무용수의 몸이 증명하게 된다.
여섯 개의 시퀀스로 분할된 춤은 혼돈에 이를 정도의 잡학이 동원된 박식함을 드러낸다. 최초의 파장: 침묵과 고요가 팽창할 정도로 가득 메우고 있는, 그러나 결코 터지지도 넘치지도 않는 초월적 수평. 얕은 호흡 한 번에도 흔들릴 수 있는 공간. 불현듯 툭, 화두(A)가 던져진다. 최초의 파장이 일어나다. 침묵과 느림으로 빚은 진중함이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기억의 생성, 발아: A는 10.10(위도, 경도)에서 각자 다른 지점에 위치한 B, C, D...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 상호작용이 시작된다. 교감, 교류, 서로에 대한 이해가 형성된다. 사물의 움직임에 대한 기억력 테스트라는 제사(題詞)는 투망에 잡힌 물고기처럼 요리되거나 기호나 상징으로 오랫동안 남아 이동원을 인지하는 붉은 목어(木魚) 역을 담당한다.
기억심화, 고립, 깊어짐: 기억은 홀로 침묵하며, 자생적 발화가 불가능하다. 건드려지지 않는 기억은 침잠한다. 깊어짐으로써 어딘가에 묻혀버리는 형상으로 소멸된다. ‘기억’, 말살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존재감을 발하기 위한 애절한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호작용에 의한 기억의 변형은 가치 있을 일말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기억’의 서글픈 존재방식이다.
다양한 기억의 양상 : 기억의 회상: A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낙타의 젖을 빠는 유목민이 있었다. 그는 눈이 먼 자로 자신의 나이는 알지 못하지만 젖 맛으로 몇 백 마리의 낙타를 정확하게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숨을 한 번 천천히 들이쉰 후 손을 더듬어 낙타의 젓을 찾았다. 젖을 단단히 쥔 후 입을 갖다 댔다.
입술을 거쳐 액체가 혀에 닿는 순간 모든 기능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목민의 입으로 들어온 액체는 그가 N.351로 칭하는 낙타의 젖이었다. N.351의 젖은 N.38보다는 온도가 낮고 N.103보다는 높은, 딱 그 중간치의 온도를 가지고 있다. 촉각을 앞세우고, 미각의 탐미로 판타지를 연출하는 ‘기억의 온도’의 분류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