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42)] 일상을 다르게 보는 비일상성의 시(詩)/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
매일 매일의 일상이란 말은 지루함, 변화 없음, 정체됨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삶은 일상의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있으면서도 실상 우리는 일상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상 탈출’이니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니 하는 것들을 꿈꾸게 되고, 우리의 진정한 인생은 현재의 일상이 아니라 일상 바깥의 어떤 것에서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일상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면 어떨까. 매일이 똑같이 느껴지는 지루한 일상의 사물들에게 다른 모습과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 어떨까.

그는 계단에 상자를 정리해 배열해놓거나 플래시 불빛을 보도에 비추거나 수박 위에 고양이 먹이 통조림을 올려놓는 등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작품 혹은 사물을 만들어낸다.
조각, 사진, 회화, 비디오를 포함한 오로즈코의 다양한 실험들은 일상적인 사물들과의 비일상적인 만남을 통해 철학적 수수께끼를 탐구한다. 오로즈코는 현대 도시사회에서 볼 수 있는 매일 매일의 사물들을 탐구하여 이를 연결하고 문맥에서 벗어나게 두고, 때로는 비꼬고 유머를 가하면서 해석하기 어려운 시(詩)와 같은 것들을 만든다.
익숙한 시트로엥 자동차를 세 조각으로 나누고, 가운데 조각을 떼어버린 후 양 쪽을 붙인 는 한쪽 면에 거울을 붙여 사물을 좁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은 시각적 환영(illusion)과 닮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자동차가 아직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친근한 일상의 사물들은 어느새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안정적인 디자인의 자동차는 극도로 과장된 모습으로 서 있다.
이러한 시각적인 충격과 다름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모호하지만 오로즈코는 사물과 작품의 경계를 휘젓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달콤쌉싸름한 시각적 농담을 던지고 있다.


오로즈코의 다소 기이한 발상으로 실제 전시 작품은 미술관이 아닌 일반 거주지의 창가에 놓여졌다. 그리고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미술관 안에서 그 작품을 볼 수 있지만, 미술관 밖 거리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도, 오렌지와 커피 잔이 놓인 아파트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그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작품인지 인지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창가에 놓인 오렌지와 커피 잔은 매일 먹고 마시는 일상적 사물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그들에게 다가설 것이다.
커피 잔 안에 커피를 담아 놓는 것이 아니라 커피 잔 위에 오렌지를 올려놓는, 그래서 작품으로 전시하는 행태는 평소에 지나쳤던 커피 잔과 오렌지가 가진 본연의 형태와 색을 그대로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오로즈코는 야외 체스 게임 테이블에 두 개의 라임을 잘라 체스 말처럼 두고, 그 장면을 사진 찍었다.(<라임의 게임>) 의자 양쪽의 사람들은 평소처럼 느긋하게 라임으로 체스게임을 할 수도, 라임을 치워버릴 수도, 아니면 맥주에 라임을 넣어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체스판이 되는 테이블의 붉은 색과 라임의 푸른 색은 신선한 대조를 보이며, 한가로운 일상, 익숙한 장소에 낯설게 놓인 라임은 싱그런 향을 풍기는 듯하다.
오로즈코는 일상을 향한 새롭고도 낯선 보기를 우리에게 제안하며, 이를 경쾌하고도 즐거운 사진으로 바꾸어버린다.
사진 속 적, 녹, 백의 색깔은 멕시코 국기의 색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진 못하지만 조용하고 긴밀하게 짜인 오로즈코의 작품들은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넣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 작은 파문을 던진다.
“나는 우리가 삶 속에서 취하는 가장 작은 제스처가 우리가 훨씬 더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들보다도 큰 방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단지 하룻밤만 묵는 호텔에서의 기억이 몇 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의 기억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지요. 예술도 그와 같습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의 것들이 비일상적인 상황에 놓일 때일 것이다.
배수구의 모양을 그대로 나타내는 공, 고인 물을 담고 있는 바람 빠진 축구공, 빈 신발상자, 요구르트 병의 뚜껑 등 오로즈코의 작품들은 너무도 소소해서 때로는 시각적 실망이 되기도 하지만 그 실망은 우리에게 작가의 말처럼 “무(nothing)에 관한 시(poem)이며, 이는 아름답게도 모든 것에 관한 것이 될 수 있다.”


“작업실은 거품과 같은 인공적인 장소이고 현실에서 벗어난 곳”이기 때문에 일평생 고정된 작업실을 두지 않고 현실과 일상성에 기반을 둔 작품을 한 오로즈코는 예술 노동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을 비일상성을 통해 우리는 일상을 다시금 읽는다. 낯선 한편의 시처럼.


멕시코 베라크루즈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the Escuela Nacional de Arte Plasticas(멕시코)와 Circulo de Bellas Artes(스페인)에서 예술 교육을 받았으며, 일상의 사물을 재구성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탐구하는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비디오 작업으로 잘 알려졌다.
1983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the 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프랑스), the Serpentine Gallery(영국), the Museo del Palacio de Bellas Artes(멕시코), the Kunsthaus Bregenz(오스트리아), the Kunsthalle Zurich(스위스), 구겐하임 미술관(미국), 퐁피두 센터(프랑스), 테이트 모던(영국) 등에서 전시를 가졌으며, 뉴욕의 모던 아트 뮤지엄에서 2009년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1993, 2003, 2005), 휘트니 비엔날레(1997), 도큐멘타 X (1997), XI (2002)에 참가하였다.
the Seccio Espacios Alternativos prize(1987, the Salon Nacional de Artes Plasticas, 멕시코), DAAD 레지던스 프로그램(1995) 및 the German Blue Orange prize (2006, 독일)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으며, 일정한 작업실 없이 전 세계를 다니며 작업하고 있다.
인터뷰 및 작가 소개 출처
Patrick Frank, Prebles' Artforms; An Introduction to the Visual Arts, 2014, Pearson Education, Inc
http://www.mariangoodman.com/artists/gabriel-orozco/
전혜정
/전혜정 미술비평가(국민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