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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 용풍우락] 18. 달의 검인력(劍引力)-(1) 산, 달,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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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 용풍우락] 18. 달의 검인력(劍引力)-(1) 산, 달, 그림자

[글로벌이코노믹 연재소설] 검법 용풍우락(110회)-칼날에 용이 뜨다
아리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아무는 미칠 듯한 마음의 갈증을 해결할 답을 찾기 위해 보름달이 뜨자마자 검령산에 올랐다.

달의 제전. 모든 게 인연에서 시작되어 인연으로 끝난다. 푸른 옷을 입은 무사는 나타났으나, 빨간 옷을 입은 무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달은 창끝 같은 나뭇가지에 찔려 고통을 받다가 구름 속으로 숨어든다. 밤하늘에 별들 사이, 누구의 쌍칼로 꿈을 막는지, 노래 소리조차 닿지 않는 거리에서 북두칠성이 빛나고 있다. 우리네 인연이 이와 같다면 다시 못 만날 별빛을 붙잡고 서럽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아, 언제쯤 자유롭게 오갈 묘법을 가질 것인가!’

비통함을 가진 무사가 애처로이 주저앉는다. 귀인이 무덤 자리에서 툭, 털고 일어나서 한 손에 부채를 들고, 깊은 단전에서 나오는 탁음으로 정가(正歌)를 고즈넉이 불러 위로해 준다.
구름에 뿌리는 비는
어디든지 내리는구나
오가도 못하는 처지가 기막혀도
소식 한자 전할 길 없어
새처럼 훨훨 춤을 추고
달에 눈맞추는 노래가 애닯구나

노랫가락에 맞춰 당장이라도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이 너울너울 춤추며 나올 것 같은 환상에 젖는다. 난데없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슈우욱, 슈우우, 퍽, 퍽!”

그림=허은숙 화백이미지 확대보기
그림=허은숙 화백
순식간에 조명탄이 치솟아 올라 대낮같이 환해졌다. 그와 동시에 이마를 흰 천으로 두른 이노우에파 부하들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들이닥친다. 제전을 치르던 무사들이 순간적으로 숲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아무는 본능적으로 바위 뒤에 숨는다.

풀잎이 밟히는 소리, 돌이 구르는 소리가 산길을 어지러이 울린다. 숲 속에서는 당황했던 의병들이 냉정을 되찾고 반격하여 여기저기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탕!’

가까이서 총소리가 들린다. 장두범 형사가 푸른 옷을 입은 무사와 실랑이하고 있다. 장두범 형사가 넘어지자 무사는 재빨리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난 일본 낭인이 그 뒤를 쫓아간다.

둥둥 두둥!

산속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린다. 이번에는 검은 옷을 입은 중국 협객들이 도끼와 창을 들고 침입한다. 검령산 속에서는 삼국 무협들의 각축전이 벌어졌다.

“또, 미행한 겁니까?”

장두범 형사는 넘어진 김에 주저앉아 있었다. 주위에는 랜턴이 떨어져 있는데, 하필이면 장두범 형사의 얼굴을 비추는 꼴로 서 있다.

“사범님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었습니다. 백범 살인 사건은 칼의 전쟁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수사 경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심오함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범인의 칼 쓰는 기술이 예리해서, 전문가인 사범님도 용의자 중의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중을 떠보려고 수첩을 보여드렸던 것입니다. 역시 검법 전문가답게 사범님은 정확하게 핵심을 짚더군요. 물론 범인을 잡으려는 것보다는 고서를 찾으려는 의도였지만요!”

장두범 형사는 급히 호출 신호가 오는 무전기를 들고 통신한다.

“어디, 어디라고… …. 몇 명이야? 뭐야! 추적하던 개들이 다 죽었다구! 호랑이가 나타나 물어뜯었다니 말이 되는 소리야, 이런 제길! 제 정신이 아니네. 요즘 세상에 호랑이가 있긴 어딨어!”

장형사는 화를 내며 무전기를 거칠게 끈다.

“삼국 무협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일망타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네요. 결정적인 순간에 눈앞에서 주범마저 놓쳤으니… …. 하긴 정말 볼만한 제전이었습니다. 그런 감동적인 검무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습니다. 묘한 기분이 들고, 완벽한 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칼빛에 알 수 없는 무엇이라도 있는 걸까요. 마치 하늘도 사람도 모두 조화로운 모습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비전 검법이 살아 있다는 걸 이젠 인정할 수밖에는 없군요. 하지만 살인 사건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아무리 오랜 의병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핑계를 대더라도 범법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형사 장두범은 넋 나간 듯 주절거리더니, 대꾸할 사이도 주지 않고, 랜턴으로 주섬주섬 뭔가를 찾는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아무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발로 슬쩍 아래쪽으로 밀어낸다.
글로벌이코노믹 글 박신무 그림 허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