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는 잠자리 한 마리, 매미 한 마리도 냉큼 잡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야간 방과 후 수업 시간이었던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얼치기 매미 한 마리가 열린 창문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내민 적이 있었다. 수업 중이라 그 정도의 미세한 변화는 알아챌 리 만무해야 하건만, 하……. 아이들은 귀신같이 그 작은 파동을 포착해낸다.
“매미다!” 최초 목격자는 우렁차게 소리친다. 이럴 때보면 실로, 매의 눈이다. 어린 시절, 술래잡기를 할 때, “얼음”이 “땡!”으로 바뀌던 그 찰나의 생동감을 알고 있는가. 가만히 앉아서 칠판만 바라보던 아이들에게 “얼음~땡!”을 선사한, 녀석의 빼꼼 인사. 덕분에 적막하던 교실은 온통 스타카토 잔치다. 잔잔한 호수에 물수제비를 뜨듯 아이들은 첨벙첨벙 여기저기서 소란이다. 본의 아니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 매미는, 제 딴에도 놀란 가슴에, 앉을 자리 하나 잡지 못하고 야단법석이다. 엄지 손가락만한 매미 한 마리 잡겠다고 빗자루와 쓰레받기까지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 무섭다면서도 얼굴에는 장난기어린 웃음이 만개했다. 겁쟁이인 나를 대신해 매미를 잡으러 들어오신 남자 선생님과 입술 박치기를 하고나서야 매미는 기구한 생을 마감했다.
야단스럽지 않게, 살포시 녀석을 잡아서 창밖으로 놓아주면 될 것을, 덜컥 겁부터 나서 이 소란을 피웠다. 참 이상하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매미나 잠자리는 나의 좋은 놀이 친구였는데……. 방아깨비의 긴 다리를 붙잡고 정말 방아를 찧는지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색감이 고운 고추잠자리를 만난 특별한 날에는, 예쁜 꼬리(배)를 입에 넣게 하거나 두 마리를 마주 대고 엉켜 싸움을 붙이기도 하는 얄궂은 행동도 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수정구슬처럼 묘하고 때론 몽롱해 보이기까지 한 잠자리의 눈을 몇 시간이고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어른이 되기 위해 세상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나 역시 이러한 것들에 차츰 멀어져간다. 그러다보니 친근감을 잃기 시작했고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용감한 시도들마저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이렇듯 작은 매미 한 마리에도 덜덜 떠는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 서글프다.
어린 시절,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뒷마당에 뚝딱, 닭장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열 마리가 넘는 닭을 며칠 동안 멀리서 지켜보다가 그 중 가장 토실토실하고 예뻐 보이는 닭에게 ‘똑순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살뜰하게 돌보며 애정을 쏟았다. 닭도 계속 보니 꽤 깜찍하게 생겼다고 느낄 즈음, 얼근한 아버지의 안주로 사라져버린 ‘똑순이’.
아, 마당에는 흰둥이도 있었다. 어느 날, 뒷산에서 내려온 뱀에게 까불다가 콧잔등을 물려 두 개의 빨간 상처가 난 귀염둥이 흰둥이. 참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만은 않은 이 모든 것들을 가만히 응시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 것이었는지…….
안도현 시인은 발견(發見)하고 또 발견(發見)하며 얻은 그 소중한 생각의 꾸러미들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이 책을 읽으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작고 나지막한 것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고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잠시 잊고 살았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속속들이 발견할 수 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게 꼬깃꼬깃 숨겨 두었던 기억의 조각들은 숨겨 놓기 전보다 더 아름답게 재생되고 있었다. 거의 어릴 때 경험했던 일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뭔가 하나를 오랫동안 응시하며 사색을 한 적이 없다는 방증이리라. 점점 겁쟁이에 멍청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어느 기사에서 보았듯 가끔은 우리 자신에게 심심할 기회를 주자. 그래서 주변의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일들에도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는 거다. 그래서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귀중한 발견들(發見)을 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창의력, 창의력, 창의력. 세 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목표이다. 그런데 이 창의력에 꼭 필요한, 발상의 전환이란 것이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안도현 시인은 이 책에서 직접 알려준다.
‘치킨’은 알지만 ‘닭’은 잘 모르는, 나무를 잘 타는 아이가 없는, 수피를 만져볼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들의 상상력은 말라가고 창의력은 어설퍼짐을 가슴으로 안타까워하는 시인.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긴 습관 하나는, 주변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의 자세가 조금은 여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나의 오감으로 느껴보고 싶은 욕망이 마구 생겨난다. 어머니가 어찌나 좋아하시는 지, 몇 번을 우정 찾아가서 먹은 ‘간장게장’, 같은 간장 게장을 먹었지만 나는 감히 생각해 보지 못한 ‘스며드는 것’에 대하여 안도현 시인은 기가 막힌 발상을 펼쳐낸다.
읽으면 절로 감탄이 나오는 안도현 시인의 작품이 그냥 가만히 있다가 나오는 게 아님을 깨닫게 해 주는 책. 어쩌면 이렇게 나직한 목소리로, 어쩌면 이토록 사소하지 않은 표현과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선사하는 책.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발견의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책. 나도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응시하고 어루만져 보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글. 바로 ‘안도현의 발견(發見)’이다. 여기서 나오는 말로 표현하자면, 정말 질투가 날 만큼 ‘개미 있는’ 책이다.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