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장의 사진 중 사진가의 예민한 촉수(觸手)에 선택(選擇)받은, 단 한 장의 사진. 수많은 피사체 중 유독 사진가의 눈길을 머물게 한 매력적인 그것은, 카메라 앵글에 잡힌 뒤 또 한 번의 꿰뚫어보기(觀)를 거쳐 자신만의 색깔을 얻었을 것이다. 찰,칵. 평범한 일상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찰나(刹那)의 미학.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가듯 후- 불면 흩어져 버릴까 두려운, 자주 깜빡깜빡하는 기억 속에 담아두기에는 어쩐지 미심쩍고 불안하리만큼 아름다운 장면들. 카메라 렌즈 너머의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고즈넉이 때로는 통렬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지금, 이곳’의 이야기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언제든 그대로 재생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진을 읽어 내기도 한다. 유심히,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진가가 담아낸 이야기들이 주절주절 생동한다. 이제 막 글을 배워 뭐든지 스스로 읽어내려 가고 싶은 아이마냥 더듬더듬하게나마 사진을 읽어본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이 손 안에 작은 렌즈를 소유한 시대, 사진은 강력한 소통의 도구이자 문화이다.
그래서일까. 출사를 나가 DSLR 사진기를 들고 세계와 소통하는 풍치(風致)가 꽤 멋스럽다. 웬만한 ‘미술전’만큼 호응도가 높아 입장객이 길게 늘어선 ‘사진전’하며, 담아낸 이야기의 맛이 궁금해서 조금 더 책값이 나가는 것을 알고도 서슴지 않고 고르는 ‘사진에세이’까지. 이제는 사진의 문화가 제법 낯설지 않다. 오히려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여백을 찾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사진과 함께 빼곡하게 들어차지 않은 메시지가 덩그러니 있지만, 여백은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다. 그리고 나와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는 여유마저 가져다준다.
‘인간이기에 ‘어찌할 없음’의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있음’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해 분투하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며 감사와 우애로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도에도 없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문화가 다른데도 우리네 희로애락의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있어 무척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열악하고 남루한 상황이지만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 오히려 그 빈틈을 삶의 지혜와 공동체적인 요소로 채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위로와 용기를 건네주었다.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잠시 정지된 인위적인 모습이 아닌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삶의 행보가 그대로 묻어난 살아있는 이야기가 찍혀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노을이 물든 마당에 모여 앉아 수확한 감자와 갓 볶아 내린 커피를 마시며 아이가 라당의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어머니. 커피 체리를 따며 지금 이 순간 커피 잔을 들고 미소 짓는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마르야나(20). 화산 지대의 급변하는 날씨에도 환경을 탓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그저 할 일을 해나가는 농부의 의연함. 전쟁으로 지구의 벼랑 끝에서 막다른 코너에 몰린 아이들의 허기진 큰 눈동자에서 신(神)을 보았다는 작가의 말.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들. 대자연 속에서 만년설과 바람, 햇살을 교실 삼아 공부하는 아이들. 공동 우물터가 만남과 친교가 되는 생활.
그 어느 것 하나 작위적인 것은 없다. 오히려 아득하니 시원(始原)에 가까운 모습들이 포착되어있다. 기계적인 것이 삶을 지배하는, 공동체의 해체와 경쟁의 구도로 때로는 본질적인 것들을 잃고 사는 지금 우리들의 삶이 과연 괜찮기는 한 것일까.
때로 잡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아주 무책임하게, 그리고 홀연히,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바람처럼 유랑하고 싶지만 여의치 못한 우리의 상황을 알아챈 눈치 빠른 작가가 전하는 순례의 이야기. ‘가장 낮은 곳에서 이 지상의 작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무너져 내리면 우리가 딛고 선 세계가 여지없이 무너질 것’임을 단언하는 입 매무새가 자못 큰 여운을 남긴다.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