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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63)] 땡땡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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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63)] 땡땡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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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정법상 불법인 적은 없었지만, 사실 만화가 정서법(情緖法)상 합법적 독서 대상이 된 지는 별로 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만화책이나 붙잡고’ 있는 아이를 보며 행복할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와 비교하면 만화도 교육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긴 했다. 열렬한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소극적 용인은 고려해볼 만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편견이라 비난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선이 너무 미끈한 만화, 원색을 지나치게 많이 쓴 만화, 인물의 표정이 과장된 만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자극적이라 판단해서다. 그러다 보니 소재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화풍이 이와 같으면 눈길을 주지 않는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기본적으로 만화를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내 나름 지지하는 만화가 있다. 바로 땡땡 시리즈다.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Herge)(1907-1983)가 평생 그린 만화다. 소년 기자 땡땡(Tintin)이 애완견 밀루(Milou)와 함께 전 세계를 다니며 재치와 용기로 온갖 사건을 해결한다.

사실 땡땡 시리즈는 유럽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고전 작품’이다. 예컨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선거 승리 연설에서 “땡땡은 세상에서 내 유일한 라이벌이다.”고 했다. 인기도와 인지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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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웬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별 인기를 끌지 못했다. 우선 이름 표기만 봐도 상황이 파악된다. 프랑스어 만화이므로 원래 발음을 따지면 Tintin은 ‘땡땡’이 맞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영어식으로 읽어 ‘틴틴’으로 소개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는 틴틴으로 누구는 땡땡으로 기억한다. 물론 이제는 그나마 양쪽 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다른 방해요소는 낯섦이었다. 20세기 전반기에 탄생한 작품이라 시간상 멀고, 또 프랑스어권 정서가 공간적으로도 멀게 느껴지기 쉽다. 일본이나 미국 애니메이션에 다듬어진 감각에서 보자면 느리고 어설프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유니콘호의 비밀>(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2011) 같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아닌 땡땡 만화책을 구태여 찾아 읽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내가 땡땡 시리즈를 지지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이런 지역적 흥행참패의 요인 때문이다. 곧 일부러 찾지 않으면 접하기 힘든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름을 프랑스어 식으로 소리 내야 하고, 유럽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고,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일본이나 미국이 아닌 곳에 눈길을 주게 하고, 이상한 괴물이나 신비한 능력이 등장하지 않고, 선이 단순하고, 색이 강하지 않고, 내용이 잔인하지 않다.

한 일 년 전쯤인가, 가족끼리 나들이 삼아 도서관에 갔다가 우리말로 번역된 땡땡 시리즈-제목에 틴틴이 아닌 ‘땡땡’이 들어간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를 발견하곤 우리 집 아이들에게 읽혀본 적이 있다. 속으로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을 거야’하는 확신과 함께.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요 며칠 우리 집 막내가 모든 땡땡 시리즈를 다 읽을 기세로 덤벼들고 있다. 도서관에서 빌린 땡땡 시리즈를 최소 세 번씩은 열심히 읽는다. 그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만화가 아니라 ‘작품’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소망하는바 문화적 편식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더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우영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원(경기 안양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