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도대체 신문을 읽는 데에 ‘혁명’이 있을 수 있을까. 신문에서 소개하는 기사가 하나의 팩트(fact)를 다루는 것이라면 어느 신문을 보더라도 그 내용은 동일하지 않을까. 신문을 읽는 데에 무언가 내가 모르는 뾰족한 요령이라도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문을 읽는 데에도 안목이 필요하다. 신문사 또는 그 신문사의 사주가 지향하는 정치적 코드가 있고, 편집인의 의도에 따라서 같은 팩트여도 그것을 소개하는 방식은 생각 이상으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신문사의 정치적 색깔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사설이다. 사설이 사설(私說)이 아니라 사설(社說)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보여주는 지면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설 외에도 신문은 교묘한 편집을 통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바를 일관되게 사람들의 무의식 속으로 심어 놓는, 생각 이상으로 명민한 생물이다. 1면에 싣는 기사의 제목과 사진부터 시작하여 각종 칼럼의 내용, 문화/연예 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 손석춘은 한겨레신문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신문이 과연 하나의 사실에 대해 어떤 식으로 다르게 보도할 수 있는지를 각 신문사의 편집 기사 내용의 비교를 통해 잘 보여준다. 그는 신문지면이 ‘평면’이 아니라 ‘입체’임을 말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이 되는 신문을 읽을 때 어떤 관점과 시각에서 그 기사를 읽어 내려가야 하는지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흔히 말하는 보수, 진보 성향의 신문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기사를 쓸 때 어떤 식으로 이를 가공하고, 또 이러한 가공을 통해 드러나는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어떤 식으로 포장하여 숨기는지 알려준다.
평소 신문에 대해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말을 들으면서도, 정작 신문의 기사 내용에 대해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신문 기사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내가 그 신문의 기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그 신문사가 의도하는 어떤 정치적 코드에 포섭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이동구 (사) 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연구위원(광성고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