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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70)] 경청(傾聽)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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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70)] 경청(傾聽)하고 있습니까?

“아, 내 말 또 무시당했어.”

‘아차’싶은 순간이다. “미안해, 못 들었어.” 멋쩍게 웃는 내게 눈을 흘기며 투정을 부리던 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선연하다. 꽤 서운했나보다. “선생님!” 족히 3번은 불렀을 테니 저렇게 입이 삐쭉 나올 만도 하다. 아기 새들이 쫑알쫑알 지저귀듯 늘 어느 정도의 장난기 어린 웅성거림에 익숙해져서 나도 모르게 반응이 늦었나 보다. 아니면 수업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내 말이 너무 많아졌던 탓이리라. 어쨌든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가며 함께 호흡을 해야 하는데, 종종 나는 이렇게 혼자만 신이나 버리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예전에 내가 그러한 사랑을 받았듯, 나도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니 최소한 그렇게 노력이라도 하는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찾아온 아이를 돌려보낸 적도 있으니 반성을 해야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생애 마지막 이야기인양 관심을 기울이라고’했던 모리 교수의 말이 인상 깊어, 실천하겠다고 다짐한 게 벌써 몇 번인데, 어쩌다보니 다시 또 입만 커져 있는 듯하다.

5월 스승의 날을 즈음하여 ‘사제동행(師弟同行) 책읽기’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어 부장이던 학생이 ‘함께 읽자’며 건넨 책 한권. 표지에는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아이가 사내의 마음에 손을 대며 듣고 있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다.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이라는 제목만 보고, 화법과 인간관계에 대한 자기계발서인가 싶어 뻔한 내용이겠거니 시시하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교감(交感)에서 왠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져 책장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화법, 심리학과 관련한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곤 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다름 아닌 바로 ‘잘 듣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가. 알면서도 잘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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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공해라고 할 만큼 수없이 많은 소리들을 듣고 사는 우리들.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본다. 오늘 나의 마음을 울린 소리는 몇 개나 될까. 그리고 나는 오늘 누군가의 마음을 그토록 살뜰하게 들어준 적이 있는가를. 이 책에서 주인공은 귀머거리 베토벤처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이토벤’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바이올린 제조사에서 일했던 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 듣는 일에 열광하던 그였지만, 정작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는 소홀했던 그. 몸에 악성 종양이라는 이상이 생기면서 그는 비로소 소중한 것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들 현이를 위해 바이올린을 만들어주고 싶어 온몸으로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벽을 쌓아 두었던 아내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생의 마지막을 달려가면서 오히려 그가 찾게 된 것은 평안과 진심. 타인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인양 살아간다면, 얻을 수 있는 진귀(珍貴)한 것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부부의 40%가 배우자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30분 미만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소중한 존재인 가족과 나누는 소통의 시간이 이토록 적다면 우리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일까 싶다.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암(癌)이라는 한자어를 풀이하면, 입(口)이 세 개나 필요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걸 산(山)에 가두어놓고 막아버렸다는 뜻이란다. 즉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들을 품고 있는데 그것을 풀어내지 못하고 가둬 두면 스트레스가 되어서 결국 암에 걸린 상태에 이른다는 풀이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힘들었던 시기, 아무런 대가없이 나의 곁에서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사람이 있었다. 너무 힘겨워서 하루하루를 버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때, 항상 먼저 다가와 이야기를 들어주던 고마운 사람들. 착하고 선한 눈망울이 마음을 울렸던 그 모습을 차마 잊지 못한다. 그 고마운 마음을 넉넉하게 받았기에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것을 돌려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그러면 어떻게 들어야, 잘 듣는 것일까? 청(廳)이라는 한자어는 듣는다는 게 왕(王) 같은 귀(耳)를 갖는 것임을 보여준다. 귀를 크게 하여 집중하여 들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열(十)개의 눈(目)을 갖고 상대의 마음(心)과 하나(一)가 되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데 경청(傾聽)이라는 것은, 상대를 향해 마음을 맞추어 가는 진정성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편견과 고집을 잠시 접어두고 빈 공간을 만들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말이 울려 퍼질 수 있다는 것. 나의 아집(我執)으로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던, 듣는 척만 했던 말들은 없었는지 돌아보자 이내 숙연해진다.
이토벤이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어 전심을 다해 만들었던 바이올린. 나무가 되어 나무의 소리를 듣고자 했던 정성스러움. 상대의 말이 아닌 그 마음을 듣기 위해 노력하고 집중하는 태도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준다는 것을, 이토벤은 생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독설과 냉소만이 넘치던 3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토벤을 통해 경청의 문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는 팀 내에 신뢰를 만들어 내고 수준 높은 소통의 문화를 이룬다.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역사를 아는가. 농사꾼의 자식인 유방이 초나라 명가의 후예인 항우를 이기고 천하의 주인이 된 이유는 바로 ‘경청(傾聽)’에 있다고 한다. 그 전까지 백전백승이던 항우는 늘 ‘하여(何如)’ 외쳤다고 한다. “내 결정이 어떠한가”라는 의미인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잘 드러난 예이다.

반면 유방은 참모들을 불러 모아놓고 늘 ‘여하(如何)’라고 조언을 구했다는 것이다. “어찌할까요?”라는 의미인데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리더였다는 것이다. 결국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비결은 다름 아닌 ‘경청(傾聽)’이라는 것이다.

듣는 척만 했던 것은 아닐까. 귀를 여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상대를 향해 진심을 보여주는 일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마음을 얻는 것?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나의 마음 자세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쉬는 시간, 아이들을 기다리며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꺼내 놓을지 기대를 해본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봐야 한다며 시도는 하지만, 번번이 넘치거나 모자라서 아이처럼 구는 선생. ‘그 적절한 선은 도대체 어디쯤일까’를 고민하며, 오늘 만나는 이 중, 단 한 사람에게라도 마음을 맞출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 경청[傾聽]: 귀를 기울여 듣는 것.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