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간다. - 물론 아직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으나- 그것은 잘못된 귀인(歸因)이며 어쩌면, 교사인 나의 욕심이자 오만의 발로(發露)라는 것을. 그 누구도 나의 소유일 수 없으며, 설사 어린 아이에게라도 감정과 생각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교사의 양심과 책임으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지도하고 그들의 삶을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내가 학생들의 삶을 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誤算)이라는 것이다. 변화는 그 사람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무자비로 다그친다고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그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 그리고 동행하며 그들과 함께 나 역시 성장하는 것. 그것이 내 몫이랄까. 자극과 기회는 제공해 줄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성장은 아이들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담임교사가 되어야 하는가? 나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 나는 누구와 동행했으며, 어떠한 교육적 도움을 받고 성장해 왔을까? 평생을 숙명처럼 안고 풀어 나가야 할 숙제이다. 노선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엇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행복하니?”라고 물었을 때 “네! 전 지금 정말 행복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거든요.”라고 대답할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금의 고통은 무조건 견디라고 하면 되는 걸까? 그 과정이 행복하고 즐거울 수는 없을까? 우리 아이들이 꿈을 찾는 과정이 왜 이리 가슴 벅차지 않은 걸까?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언젠가는 『연금술사』의 이야기가 실현될 수 있겠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24명의 아이들에게는 일상적이고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대부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지만 ‘용기’가 없어서, ‘귀찮아서’, 감히 ‘엄두’를 못내는 일들을 이 아이들은 모두 척척 해낸다. 어른인 나에게도 큰 도전을 가져다 줄만큼 열정이 넘친다. 누군가 시켜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가슴 뛰는 일을 찾아서 직접 발로 뛰는, 혹시나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길을 일구어 나가는 그야말로 용한 아이들이다. 자아를 풍부하게 일궈나가는 열정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획력, 추진력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일찍이 공자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고 했던 것처럼 이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길 줄 안다. 예진이나 여진이의 자원 봉사 활동은 단지 스펙 쌓기를 염두에 둔 게 아니다. 봉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경험의 세계가 넓어지며 자존감과 자신감을 고양시켜 주는 배움의 장이다. 또한 이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교사를 제외한 어른의 후원자가 있다. 어른과의 든든한 신뢰관계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아이들.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늘 열린 자세이다.
외국인이든 또래 그룹이든 고은이와 준표처럼 너울가지가 좋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누군가 알려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다. 직접 찾아다닌다. 무서울 정도로 주도면밀하게 찾아다닌다. 스승을 구하러 찾아다니는 적극적인 자세, 사회 운동에도 참여할 수 있는 대의적인 자세,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는 독서, 취미활동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게 무엇이든 무서울 정도로 몰입하는 집중력,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 아르바이트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독립심 등 이들의 공통분모는 나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강요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방향을 잡을 수는 있으니까.
이 아이들은 특별하게 가정환경이 좋거나 특별한 교육적 환경에 있는 경우는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오히려 결핍이 많은 아이들이 상당하다. 그러나 결코 주저앉거나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행복한 자신의 인생을 위해 평범의 궤도를 용감하게 벗어 던지고 자기만의 길,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간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이들의 선택을 믿고 다만 지지하며 기다려 줄 뿐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건강한 관계.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