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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01)] 화무십일, 이문구와 관촌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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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01)] 화무십일, 이문구와 관촌수필

『관촌수필』(1977)은 연작소설이다. 「일락서산」부터 시작하여 「월곡후야」까지 모두 8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관촌을 배경으로 하여 진행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작품을 읽는 느낌이 든다. 그 중 두 번째로 실려 있는 「화무십일」은 윤영감네 일가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누군가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윤영감의 며느리인 솔이 엄마와 관련된 비극을 다루지만 ‘나’의 어머니가 보여주는 따뜻한 인정과 윤영감네 가족사를 들려주는 서술자의 구수한 입담은 슬픈 사연조차 그것을 특별한 누군가의 아픔으로 인식하게 하기보다는 1970년대를 살아가는 농촌 마을의 소소한 일상의 하나를 누군가의 어깨너머로 전해 듣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아련하다는 느낌이 더 정확하달까.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잠결에 건넛마을 사람들의 근황을 듣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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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는 알다시피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일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다. 6․25 전쟁 와중에 한 해 동안 3대에 걸친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조부와 아버지와 두 형이 남로당 활동과 관련된 문제로 죽고 그는 온갖 고생을 하며 자랐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문학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 역시 죽음의 공포에서 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읽던 책에서 문인 하나가 전쟁의 난리 속에 사상 문제로 검거되어 죽게 되었는데 다른 문인들이 힘을 합쳐 대통령에게 구명을 탄원하여 풀려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 글을 읽고 문인이 되면 잡혀가도 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문학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1965년 「다갈라 불망비」로 김동리에 의해 추천을 받고, 이듬해에 「백결」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관촌수필』을 비롯하여 『우리동네』 등의 연작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웠고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북에 홍명희가 있다면 남에는 이문구가 있다.’는 말은 그에 대한 가장 간결하고도 뚜렷한 평가일 것이다. 『관촌수필』을 비롯하여 『우리동네』 등은 그가 왜 농민소설의 대표적 작가이며 구술적 문체의 미학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지 잘 보여준다.

「화무십일」은 무슨 뜻일까. 두 가지 의미가 아닐까 싶다. 관촌에 흘러들어와 열심히 생활하며 재기를 준비하고 있던 윤영감네 일가가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이 그 하나요, 솔이 엄마가 의처증이 심한 남편을 피해 솔이를 데리고 도망을 갔다 하더라도 그 삶이 별반 새로울 게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문득 궁금한 점이 또 생긴다. 그렇다면 꽃이 열흘을 핀다고 볼 때 나의 삶은 며칠쯤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이동구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진로독서센터 연구원(광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