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도 여러 흠을 가진 지도자였다. 책상물림 같은 면도 보이고 사대와 관련한 태도도 기대에 영 못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생각했던 것, 알아왔던 것보다도 더 큰 거인이었다. 원대한 비전과 이의 실현을 위해 사람들을 배치하고 지휘, 격려하며 실현해 나가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한두 가지의 일도, 한두 분야의 일도 아닌 다방면의 전혀 새로운 일들을 그렇게 무서운 뚝심으로 이루어 나갔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훈민정음의 창제가 최고의 업적이겠지만, 당시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세종이 이룬 숱한 창조의 작은 일부일 뿐이지 않은가?
또한, 황희에 대한 기록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동안 알아왔던 청렴 이미지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들이 생생한 사건 기록을 통해 펼쳐지자 조금 어이없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무려 24년간이나 정승자리에 있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비록 수신제가(修身齊家)엔 흠이 있지만(매관매직, 간통 등)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하는데 엔 꼭 필요한 인물로(혁신적인 세종의 견제자이자 보완자의 역할과 거침없고 분명하지만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은 소신 있는 의견으로 정국을 이끈) 기용한 세종식 인재등용법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석인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횡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