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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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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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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야, 축제 때 무대에서 후배들과 어우러져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네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보면서 선생님도 덩달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단다. 인생에서 이런 축제와 같은 일들은 사람을 들뜨고 흥분하게도 하지. 그러나 축제의 막을 내린 지금에는 오히려 허탈하고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루할 지경이라고 했지. 수능 후 학교에 오면 담임 선생님 얼굴 한 번 보고, 영화 한 편 보고 친구들과 수다 떨다가 집에 가는 것이 허무하다고……. 집에 가서도 휴대폰 만지다가 하루가 다 가는 네 삶이 한심하기도 하다고 했지.

그것보다 우리가 소위 좋은 대학이라는 곳에 합격한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축하를 해 주지만, 사실 속으로는 네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 때문에 괴롭다고 했지. 그 느낌의 이면에는 뭐든지 잘하는 언니와 늘 비교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한 없이 작아지는 그루의 그 마음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항상 언니와 비교하는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알게 된 어느 날 너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되었지. 공부도 열정도. 그럴수록 너의 부모님은 더욱 더 너와 언니를 비교했었지.
그런데 그루야 인간은 왜 타인에게 칭찬 받기를 바라는 걸까. 물론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루야 우리가 사는 이유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루가 그루를 위해 살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그루를 위해 살아줄까.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생각하면서 산단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타인의 평가에만 신경을 쓰면 끝내는 타인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단다.

그루야, 우리가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정받기를 바란 나머지 진정한 자신은 버리고 타인의 기대에 따라 타인의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만 한 일이야. 늘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전전긍긍하느라 '나'라는 존재를 억누게 될 수도 있어. 그런 삶이 과연 건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한 삶이 이기적인 삶이라고만 몰아세울 수 있을까.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느라 진정한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인 것 같구나. 그것이 비록 부모라 할지라도 그루의 나이에는 부모로부터 서서히 자립을 하는 것이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길인 것 같구나.

그루를 처음 봤을 때 어두운 얼굴 표정과 처진 어깨는 너의 과거 어느 시점에 불행의 기억이 있었다는 것을 감지할 만큼 선생님 눈에는 크게 보였단다. 그런데 그루가 불행한 것은 반드시 과거의 환경 탓만은 아닐 거야. 그렇다고 그루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지.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갑자기 '용기'라는 말에 뜬금없다는 생각을 할지도 몰라.

여기서 우리는 심리학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심리학의 거장으로 보통 프로이트와 융을 이야기 하지. 프로이트는 너도 많이 들어본 사람이지? 거기에 우리는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를 빠트릴 수가 없단다. 아들러 심리학은 트라우마를 명백히 부정하지. 이런 면에서 그의 발상은 굉장히 새롭고 획기적이야.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은 마음의 상처(트라우마)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아들러는 트라우마 이론을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어.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트라우마)으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희망은 떠오르는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접경 지대에 위치한 토바르닉의 임시수용소에서 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헝가리가 엄격한 국경 통제에 돌입하면서 크로아티아가 서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새로운 루트로 등장했지만 크로아티아 역시 세르비아로부터 크로아티아로 이르는 도로들을 대부분 폐쇄하기 시작했다./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희망은 떠오르는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접경 지대에 위치한 토바르닉의 임시수용소에서 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헝가리가 엄격한 국경 통제에 돌입하면서 크로아티아가 서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새로운 루트로 등장했지만 크로아티아 역시 세르비아로부터 크로아티아로 이르는 도로들을 대부분 폐쇄하기 시작했다./사진=뉴시스
이 말의 의미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는 말이지. 가령 엄청난 재해를 당했다거나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았다면, 그런 일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무언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야.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지. 왜냐하면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한다는 것이야. 이런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거야.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뒤로 미뤄서는 안 되지.
그루야, 대학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초조함에 사로 잡혀있는 것 같아. 그러지 말고 그동안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못한 것들을 시도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데 너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면 항상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고 했지. 그보다는 아들러의 말처럼 세상을 향해 용기를 내고 도전해 보길 바라. 도전하는 사람에게 항상 희망은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너무나 유명하지만 또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유대인 외과의사 이야기를 해 줄게.
나치스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 되었던 젊고 유능한 한 유대인 외과의사가 있었지. 그는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 동족들의 행렬을 보면서 머잖아 자기 자신도 가스실의 제물이 될 것을 알고 있었지. 어느 날 노동 시간에 이 젊은 외과의사는 흙 속에 파묻힌 깨진 유리병 조각을 몰래 바지 주머니에 숨겨 가지고 돌아왔어. 그리고 그날부터 그는 매일 그 유리병 조각의 날카로운 파편으로 면도를 했지. 동족들이 차츰 희망을 버리고 죽음을 기다리며 두려움에 떠는 동안, 그는 독백하듯 중얼거렸어.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는 죽음의 상황 속에서 아침과 저녁 꼭 두 번씩 면도를 했단다. 오후가 되면 나치스들이 들어와 일렬로 선 유대인들 중에서 그날 처형자들을 골라냈지만 유리 조각으로 피가 날 정도로 파랗게 면도를 한 외과의사는 차마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지. 왜냐하면 그는 잘 면도된 파란 턱 때문에 삶의 의지에 넘치고 아주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으며 그를 죽이는 것은 이르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지. 많은 동족들이 가스실로 보내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어.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그리 서두를 것이 못 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그 외과의사는 결국 나치스가 완전히 패망할 때까지 살아남아서 아우슈비츠를 떠날 때 그는 이렇게 독백했단다.

"가스실로 떠난 동족들은 한 번 죽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그러나 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죽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죽어야 하는 삶이라. 우리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을까. 늘 다른 사람의 평가와 인정에 연연해하면서 내 삶을 내가 만들어가지 못하고 괴로워만 한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용기를 내는 일이란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그루에게 주어진 삶을 힘차게 개척해 나갔으면 좋겠구나. 이제 더 큰 일들이 그루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나 과거에 매여 있지 않고 용기 있게 희망을 꿈꾸는 그루를 선생님은 언제까지나 응원하고 싶구나. 12월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아들러의 '용기의 심리학'을 떠올리며 희망의 1월을 맞았으면 좋겠구나. 그루를 사랑하는 터기 쌤으로부터…….

2015년 12월 23일
달빛로에서 터기쌤/태용희(그루터기 100년 학교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