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13)] 말들의 풍경

글로벌이코노믹

[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13)] 말들의 풍경

고종석의 글을 읽으면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정갈한 샘물을 떠 마시는 느낌이다. 같은 모국어 화자이며 같은 한글로 글을 쓰지만, 그는 어쩌면 이리도 박식하며, 그 박식이 어쩌면 이렇게 현학적인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글의 맛을 살리는 것일까. 잘 만들어진 음식은 각 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풍미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둔다던데, 그의 글은 음식에 빗대자면 참으로 잘 만든 음식이 아닐까 싶다. 그의 언어는 담백하면서도 매우 향기롭고 정갈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미지 확대보기
또 하나, 그의 글은 매우 논리정연하다. 그러나 딱딱하지 않고 따스하다. 논리적인데 그 글이 따스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이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덤덤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그의 박식함에 주눅이 들어 공부하듯이 읽는다기보다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같이 생각하게 되고 미처 알지 못했던 영역까지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게 된다. 그는 읽는 이에게 양질의 정보를 통해 생각의 틀을 풍부하게 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제에 대해 곰곰이 되씹으면서 그의 견해에 공감하게 되고, 여러 가능한 반박들에 대해 그가 이미 얼마나 많은 반론들을 펼쳐놓았는지 뒤늦게 알게 된다. 재미있고 인상 깊은 글은 두세 번 반복해서 읽게 되는데, 읽을 때마다 그가 한 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그 짧은 글 안에 무리 없이 녹여 놓았는지 깨우치게 된다. 논리정연하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글의 정갈함을 느끼는 이유가 그것이다.

대략 20여 년 전,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 대해 한 물리학 교수가 소개한 말이 생각난다. 그 교수는 호킹이 쓴 논문을 읽으며 그 글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단지 이해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다는 말을 했다. 참으로 호킹에 대한 극찬이 아닐 수 없는 말이다. 같은 물리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자존심도 있을 법한데, 다른 이가 쓴 논문을 읽고 자신이 그 글을 무리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학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고 했으니 말 다한 셈이 아닌가. 고종석의 글을 읽으면서 그 교수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정갈하고 빼어난 문장이 주는 글 읽는 즐거움, 내가 그의 글을 지치지 않고 읽으며 그의 박식함과 겸손함과 소탈함을 엿볼 수 있다는 기쁨은 그를 통해 나 자신마저 한층 지적, 정서적으로 고양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며 나를 들뜨게 한다. 올해의 마지막 주일을 그의 글과 함께 보내고 싶다.
이동구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진로독서센터 연구원(광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