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을 찾아다니며 오감의 풍요로움을 체험하는 것이 자극적인 맛을 느끼고 싶을 때 가끔 해 볼 만 한 일이라면, 시간과 돈을 차치하더라도 집에서 언제든 해먹을 수 있는 단출하고 정갈한 식단이야말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고담하게 채워주는 양식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요리 레시피들이 존재하는가. 그런데 유독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요리에 담긴 마음과 그 의미를 헤아려 볼 때, ‘엄마’가 건네는 ‘레시피’라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냥 요리책이 아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건네주는 ‘인생의 레시피’일 것이 분명하기에.
“딸, 밥은 먹었니?”
부모님과 같이 살든지 아니든지, ‘엄마’의 ‘밥 먹었냐’는 한 마디는 우리에게 이상스레 큰 힘을 발휘한다. 살아가며 풀어내야 할 숙제들이 왜 이리 많은 건지, 여러 가지 신산스러운 일들 앞에 설 때 엄마가 건네는 ‘밥심’과도 같은 메시지. 툴툴 털고 일어나 몸을 부산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책이다. 음식에 젬병인 내가, 굉장히 의욕적으로 시금치샐러드를 만들어봤을 정도니까.
책 전면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번거롭지 않고 간단한 레시피 27가지를 각각의 상황에 맞게 알차게 쏙쏙 버무려 놓았다. 가령 소망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은 날이면 치즈가루를 성질대로 뿌린 시금치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 인생이 한없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엄마 없는 아이 같은 날에는 어묵 두부탕을, 자존심이 깎이는 날은 안심스테이크를 해먹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유난히 춥고 마음이 아픈 날에는 축 처져 있지 말고 냉장고 문을 열어, 있는 재료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보며 육체를 움직이는 거다. 좋은 음식으로 몸부터 챙기면서 소박하게나마 우리 자신의 마음자리를 순연하게 지켜내는 일. 자신을 위해 정갈하게 차려낸 음식을 음미하며, 가만히 엄마의 조언을 새겨본다.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중략) 명심해라. 이제 너도 어른이라는 것을.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은 음식이든.” (p.27, p.30)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마음’이 차려진 밥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에게 전하는 엄마의 가장 낮고 포근한 목소리. 우리의 지친 영혼을 쓰다듬어 주는 보드라운 음성이다.
27가지 레시피 중 내게 가장 와 닿았던 3가지만 이야기 보려 한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므로 밀봉한 나머지 24가지를 차려내는 것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둔 채. 주의할 것은, 내가 펼쳐낸 이 밥상은, 필자 ‘한소진’의 ‘마음대로 코스’라는 점이다.
뭔가 몸 안에 꽉 차 있다고 느껴 속이 답답한 날, 피부로 트러블이 표출되고야 마는 언짢은 날 추천하는 레시피다. 가령 마음이 욕심과 집착으로 가득 차 있는 날 말이다. 흠, 집착과 사랑을 구분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집착인 줄도 모르고 집착하며 고통스러워했던 기억, 누구나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집착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것을 버리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시시포스가 밤사이 굴러 떨어진 돌을 하루 종일 밀어 올리며 헛되이 고통을 당하 듯’ 비워내자고, 신께 맡기자고, 아주 멀리 버리고 와도 날이 새면 머리맡에 와 있곤 하는 ‘집착’이란 놈. 독소를 해독해주는 녹두죽을 입 안에 녹여내며 가만히 ‘엄마’의 말을 듣는다. 먼저 집착인지 사랑인지 구분하는 일이 순서란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데, 어떠한 것으로부터 고통이 오면 집착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이렇게 하면 네가 기쁘고 그가 저렇게 하면 네가 슬픔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그게 집착’이란다. ‘사랑하면 잘 헤어질 수 있지만 집착하면 헤어지지도 못한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게 누구든 심리적 거리를 잘 유지해야 한다. 칼린 지브란의 말처럼 “서로 사이에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거리를 두어야”하는 것. 알면서도 잘 안 되는 이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각한다. 어떤 사람도 똑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관계는 시작되므로.
메인: 자존심이 깎이는 날 먹는 안심스테이크(세 번째 레시피)
마트나 정육점에서 고기를 3센티미터 혹은 그 이상 두툼하게 썰어달라고 한 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듬뿍 뿌린다. 여기에 후추와 허브를 뿌리고 30분 이상 재운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고기를 익힌다. 나는 웰던 정도가 좋다. ‘커다랗고 깨끗한 접시에 스테이크를 담고 김치를 어떤 샐러드보다 예쁘게 곁들여.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를 놓고 먹기 시작한다.’ 이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하고 우아하게 음미하며 자신을 가장 귀하게 대접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살다보면 세상의 잘난 사람들, 가시 돋친 사람들에게 무참히 자존심이 밟히는 날이 있다. 아마도 이런 날 나는 시무룩하게 엎드려 있겠지. ‘엄마’는 말씀하신다. ‘너는 네 인생의 주인이야. 길거리에 서서 네 인생을 구경하며 누가 너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을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러니 힘을 내자. 이런 날 안심스테이크 어때?’라고. ‘엄마’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쉽게 풀이해 준다. ‘만일 어떤 친구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왠지 화가 나고 아이스크림, 짜장면, 라면, 불닭볶음 이런 게 먹고 싶어지면서 오늘따라 내가 왜 이렇게 밉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 친구하고의 만남을 자제하라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했지만, 살아남은 그는 자기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식판의 겉면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매일 면도를 했다고 한다. 그는 살아남았고 스스로 빛나는 그를 해칠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는 게 결론이다. 그게 어떤 상황이든. 나는 귀한 사람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나 자신을 돌보며 내가 속한 모든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사랑하는 것. 나는 또 하나의 귀한 보물을 얻는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난다면, 돌아와 거울을 보며 ‘이 정도면 어디 내놔도 괜찮지?’하는 싱싱한 생각이 들고 왠지 신이 나서 재잘거리거나 차분히 일기를 쓰든 좋은 책이 읽고 싶든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엄마’ 말마따나 그런 사람을 만나야겠다.
디저트: 몸을 비우기 위해 먹는 된장차(스물일곱 번째 레시피)
몸은 약해져있고 일은 많아 짜증이 나고, 혹은 긴 여행으로 멀미가 나거나 피곤하여 모든 것이 싫어지는 그런 날, 이럴 때면 ‘엄마’는 자신을 비우려고 노력한단다.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대신 된장차를 끓여 마시는 것. ‘좋은 된장을 엷게 풀어’ 숭늉 마시듯 그냥 마시는 거란다. 마시면서 물어보라. 내 안이 너무 꽉 차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어쩌면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힘들다는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말씀하신다. ‘비워야 잘 내려오고, 잘 죽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우리의 누추한 삶은 초라해지지 않는다고.’ 그럼 어떻게 비워야 할까? ‘엄마’의 충고는 간단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딱 하루만 지내보기. 그러나 생각만치 쉬운 일이 아니라서, 진실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을 때 이런 겸손한 태도가 나올 수 있다. 지금, 여기, 너 자신 그리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것. 2016년 이것을 목표로 삼아, 노래하듯 그저 그렇게 담담히 걸어가련다. 삶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 따뜻한 된장차 한 잔과 좋은 음악, 좋은 글이 주는 깨달음이 실로 웅숭깊다.
백석의 시에는 음식에 대한 수많은 어휘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시를 읽으면 내 마음은 어김없이 몰랑몰랑, 누긋누긋해진다. 그 역시 ‘음식’에 담긴 따뜻한 힘을 진즉에 알아챈 혜안이 있던 것이다. 음식에 대한 ‘평’이 아닌 음식에 담긴 ‘마음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가장자리를 따뜻하게 지펴주는 난로 같은 책. 작가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밥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음식은 ‘마음’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자, 그러면 오늘은 무얼 먹어볼까?
나는 오늘 당신의 고단한 하루에 ‘따스하고 보드라운 프렌치토스트’를 대접하고 싶다. 먹고 힘내자!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