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공존과 평화’의 원리는 자본의 논리에 맞서는 것입니다. 거대하고 위압적인 강자의 힘에 밀려 빛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새겨보자는 것이지요. 마치 여러 그루의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이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함께’ 하며 좋은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계는 서로 존중하고 아픔과 기쁨을 나누며 타인을 인정함으로써 잘 유지되고 견고해집니다. 좋은 만남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기 형식의 이 책에서 그가 찾아간 세계 여러 곳은 약자를 업신여기고 짓밟는 강자의 논리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잉카인의 슬픔이 전해지는 침묵의 도시 마추픽추가 그러했고, 아우슈비츠에서 본 끔찍한 살육의 장면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밖에 로마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 등 오늘날 인류가 자랑하는 유적지들은 대부분 강대국이 남긴 어두운 자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칫 저자의 이런 시각이 너무 비관적이고 시니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우리를 성찰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냉철하게 우리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깨달음은 오늘의 깨달음 위에 다시 내일의 깨달음을 쌓아감으로써 깨달음 그 자체를 부단히 높여나가는 과정의 총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며칠 전 그의 타계로 인해 이제 깨달음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한 차원 높일 대상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슬픔이 가슴에 고입니다. 그의 큰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새해 첫 날처럼, 어두운 밤을 보내고 빛나는 태양을 맞이하는 아침처럼, 인간관계를 처음 맺을 때의 기대와 설렘처럼, 그렇게 처음처럼 늘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래서 나무가 저마다의 발밑에서 끊임없이 물을 길어 올려 우람한 숲을 만들 듯, 우리 모두 처음의 새로운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모든 이들이 더불어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아늑한 숲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예경순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교육연구소 연구원(서울교대 평생교육원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