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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41)] 지적 소양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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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41)] 지적 소양의 쓸모

그리스 고대사의 대표 저자 투퀴디데스는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어보면 그런 느낌을 짚을 수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기행문 같은 느낌까지 드는 이유는 중간 중간 헤로도토스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투퀴디데스의 책은 담백한 보고서 같은 느낌이 든다. 잘 정돈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투퀴디데스를 꼼꼼히 정리하며 읽다가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그것은 케르퀴라 내전(제3권 82절부터 85절)에 대한 논평이다. 케르퀴라는 당시 강대 세력인 아테네와 라케다이몬 중 어느 쪽 편에 설 것인가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내전에 빠진다. 이어서 부자인 소수파와 민중과 노예로 구성된 다수파가 서로 죽고 죽이는 잔혹한 상황이 벌어졌다.

글 뒤에서 조용히 숨을 쉬던 투퀴디데스는 이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처음은 이렇다. “이번 내란은 그처럼 잔혹한 양상을 띠었고, 처음 발생한 내란인 만큼 충격적이었다. 나중에는 헬라스 세계 전체가 동란에 휘말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이런 내란은 헬라스의 도시들에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는데, 이런 고통은 사람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잔혹함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고, 주어진 여건에 따라 양상이 달라져도 되풀이되고 있으며 언제나 되풀이될 것이다.” (286쪽) 심적 충격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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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인을 권력욕으로 파악했다. “이 모든 악의 근원은 탐욕과 야심에서 비롯된 권력욕이었으며, 일단 투쟁이 시작되면 이것이 광신 행위를 부추겼다.” (288쪽) 권력욕에서 촉발된 상황은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내란 때문에 헬라스 세계 전체가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고상한 성품의 특징인 순박함은 조롱거리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289쪽)
논평 중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대개 지적 수준이 낮은 자들일수록 살아남을 가망이 더 많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약점이 있고 상대방이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자신들이 토론에서 지거나, 음모를 꾸미다가 약삭빠른 상대방에게 미리 들통 날까 두려워 대담하게 곧장 행동에 나서곤 했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의 상대방은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미리 내다볼 수 있다고 과신하다가, 그리고 정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곳에서는 행동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다가 그만큼 준비를 소홀히 한 탓에 더 쉽게 제거되곤 했다.” (289쪽)

도덕적으로 혼란한 세상에서 지적 수준이 높은 자들의 생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투퀴디데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지적 수준이 높은 것을 훌륭한 교양이나 지적 소양으로 해석하면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부분을 그렇게 읽고자 한다. 당대의 지평에서 합리적 절차나 대책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태도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러면 ‘난세에는 지적 소양이 쓸모없었다.’는 명제로 요약된다. 오늘 우리가 이 시대를 난세라 느낀다면 지적 소양이 생존이라는 목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곧 ‘인문학이 밥을 먹여주나’는 푸념과 비슷해진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렸다. 지적 소양의 거룩함, 영혼을 살찌우는 일의 절박함, 르네상스적 인간상, 이런 이미지의 덧없음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반드시’ 그렇듯 확실한 답은 없다. 다만 투퀴디데스에게서 약간의 힌트를 얻게 된다. 그는 이 상황을 “도덕적 타락”으로 규정했으며, “불법행위”라 간주했다. 더 나아가 “그러잖아도 법을 어기기를 좋아하는 인간 본성은 자신이 정념을 억제할 수 없으며, 정의를 경멸하며, 무엇이든 더 우월한 것에 대항한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었다.”(290쪽)고 평했다.

인간의 도덕적 타락을 마음 아파하고, 기록으로 남겨 반면교사라도 삼아야 한다는 믿음. 도덕이 회복된 세계를 이루어보자는 호소. 나는 투퀴디데스가 이 지점에 서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적 소양의 쓸모를 높이려면 지적 수준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김우영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경기 안양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