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써준다고 언어를 제작한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뜻밖에 지금껏 알려진 인공어는 수백 개에 이른다. 공식적 통계는 아니지만, “Fallen Tower: Artificial Language Page”에는 662개의 인공어 목록이 제시되어 있다. 적어도 662개 이상의 언어가 창안됐다는 사실이 자못 놀랍다. 그중 그래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만 살피면 볼라퓌크(Volapuk, 1879년), 에스페란토(Esperanto, 1887년), 이디엄 노이트랄(Idiom Neutral, 1902년), 이도(Ido, 1907년), 옥시덴탈(Occidental, 1922), 인터르링구아(Interlingua, 1951년)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최초의 근대적 인공어로 언급되는 볼라퓌크는 독일인 신부(神父) 요안 마르틴 슐라이어(Johann Martin Schleyer)가 1880년에 발표했다. 영어 어휘를 기반으로 삼고 음운과 문법은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참고하였다. 발표 직후 볼라퓌크는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과 인기를 얻었다. 전성기에는 25개 언어로 된 316가지 교재가 나올 만큼 융성했으나, 언어체계의 심화 및 정비 과정에서 심각한 분열을 겪고 다른 한편 그즈음 발표된 에스페란토 때문에 급속도로 영향력을 잃게 된다. 현시점에서 볼라퓌크는 실패한 인공어지만 그 당시 국제 언어로 널리 통용되던 프랑스어를 넘어서 “중립적인 국제어 도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인공어를 만들고자 했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 세계 사람들이 쉽게 배우고 익혀서 서로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국제어(國際語)를 만드는 데 있었다. 어찌 보면 성경의 바벨탑 사건으로 상징되는 언어적 혼란을 극복해보자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 이것이 국제 인공어가 지향하는 이상(理想)이다. 이 대목에서 오해가 없길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언어란 모국어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를 대치하는 언어를 말한다. 예를 들어 에스페란토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인은 한국어와 에스페란토를, 일본인은 일본어와 에스페란토를, 미국인은 영어와 에스페란토를, 중국인은 중국어와 에스페란토를, 프랑스인은 프랑스어와 에스페란토를 할 줄 안다면,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각 모국어에 쌓인 문화적 체험을 에스페란토라는 공동의 언어를 통해 상호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에스페란토가 지향하는 ‘1민족 2언어주의’는 바로 이 점을 응축한 표현이다.
‘바벨탑에 도전한 사나이’는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의 삶을 다룬 전기(傳記)다. 에스페란토를 만들게 된 동기, 경위, 우여곡절을 생생하게 그린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인류애와 평화를 향한 그의 열렬한 마음이다. 편안한 삶에 부록처럼 달린 과업이 아니라 평생을 헌신한 일생일대의 사업이었기에 마음 뭉클하다. 하지만 벌써 129년을 살았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에스페란토이기 때문에 자멘호프 박사 자신도 저 하늘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김우영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원(경기 안양여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