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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73)] 바벨탑에 도전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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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673)] 바벨탑에 도전한 사나이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중국어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거나 접하는 이런 언어를 묶어 자연어(自然語)라 한다. 자연스럽게 발생하였고 사용자들에 의해 오랜 세월 조금씩 조정되어 간다는 성격을 부각한 이름이다. 그 반대 개념으로 인공어(人工語)가 있다. 인공어는 자연어와는 달리 처음부터 의도와 목적을 갖고 기획하여 ‘제작’하고 통용시키는 언어를 말한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쓰는 컴퓨터 언어도 인공어의 하나로 볼 수 있겠으나, 인간과 기계가 소통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만큼 인공어의 전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인간과 인간이 의사소통을 위해 창안한 언어만을 인공어로 분류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누가 써준다고 언어를 제작한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뜻밖에 지금껏 알려진 인공어는 수백 개에 이른다. 공식적 통계는 아니지만, “Fallen Tower: Artificial Language Page”에는 662개의 인공어 목록이 제시되어 있다. 적어도 662개 이상의 언어가 창안됐다는 사실이 자못 놀랍다. 그중 그래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만 살피면 볼라퓌크(Volapuk, 1879년), 에스페란토(Esperanto, 1887년), 이디엄 노이트랄(Idiom Neutral, 1902년), 이도(Ido, 1907년), 옥시덴탈(Occidental, 1922), 인터르링구아(Interlingua, 1951년) 등을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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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근대적 인공어로 언급되는 볼라퓌크는 독일인 신부(神父) 요안 마르틴 슐라이어(Johann Martin Schleyer)가 1880년에 발표했다. 영어 어휘를 기반으로 삼고 음운과 문법은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참고하였다. 발표 직후 볼라퓌크는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과 인기를 얻었다. 전성기에는 25개 언어로 된 316가지 교재가 나올 만큼 융성했으나, 언어체계의 심화 및 정비 과정에서 심각한 분열을 겪고 다른 한편 그즈음 발표된 에스페란토 때문에 급속도로 영향력을 잃게 된다. 현시점에서 볼라퓌크는 실패한 인공어지만 그 당시 국제 언어로 널리 통용되던 프랑스어를 넘어서 “중립적인 국제어 도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인공어를 만들고자 했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 세계 사람들이 쉽게 배우고 익혀서 서로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국제어(國際語)를 만드는 데 있었다. 어찌 보면 성경의 바벨탑 사건으로 상징되는 언어적 혼란을 극복해보자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 이것이 국제 인공어가 지향하는 이상(理想)이다. 이 대목에서 오해가 없길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언어란 모국어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를 대치하는 언어를 말한다. 예를 들어 에스페란토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인은 한국어와 에스페란토를, 일본인은 일본어와 에스페란토를, 미국인은 영어와 에스페란토를, 중국인은 중국어와 에스페란토를, 프랑스인은 프랑스어와 에스페란토를 할 줄 안다면,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각 모국어에 쌓인 문화적 체험을 에스페란토라는 공동의 언어를 통해 상호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에스페란토가 지향하는 ‘1민족 2언어주의’는 바로 이 점을 응축한 표현이다.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국제인공어(國際人工語)로 평가받는 에스페란토는 폴란드 출신의 안과의사 라자로 루드비코 자멘호프(Lazaro Ludviko Zamenhof) 박사가 창안하여 1887년에 발표했다. 러시아령의 방직업 중심 도시인 비아위스토크에서 성장한 자멘호프는 폴란드, 독일, 유대, 러시아의 네 민족이 섞여 살며 서로를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헐뜯는 상황을 보며 그 원인이 언어의 차이와 소통의 부족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고교 재학시절 ‘프라 에스페란토(혹은 링그베 우니베르살라)’를 만들어 동급생과 공유하면서 국제어의 초석을 놓는다. 그 후 1887년 제1서(Unua Libro 우누아 리브로)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아울러 자신이 만든 언어에 대한 저작권을 영구히 포기함으로써 새로 탄생한 국제어가 개인의 영달이 아닌 인류 전체의 평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길 ‘희망’했다. ‘에스페란토(Esperanto)’라는 명칭은 자멘호프가 사용한 필명(筆名)에서 유래했으며, ‘희망하다’는 의미의 동사 esperi(에스페리)에서 비롯된다.

‘바벨탑에 도전한 사나이’는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의 삶을 다룬 전기(傳記)다. 에스페란토를 만들게 된 동기, 경위, 우여곡절을 생생하게 그린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인류애와 평화를 향한 그의 열렬한 마음이다. 편안한 삶에 부록처럼 달린 과업이 아니라 평생을 헌신한 일생일대의 사업이었기에 마음 뭉클하다. 하지만 벌써 129년을 살았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에스페란토이기 때문에 자멘호프 박사 자신도 저 하늘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김우영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원(경기 안양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