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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02)]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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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02)]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마음이 뒤숭숭한 때가 있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선뜻 어느 것 하나 손이 가지 않고, 이런 저런 상념으로 마음이 심란해지는 때,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을 꺼내 펼쳐 본다. 첫 장을 펼치는 것이 어렵지, 막상 한 줄 두 줄 무심코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한참 책에 빠져 있는 나를 느끼게 된다. 잠시 잠깐 책을 읽는 나를 의식하다가도 금세 다시 글의 내용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을 어지럽히던 상념들도 하나 둘 가라앉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해진다. 그리고 앞서의 심란함과는 다른 형태로, 고요했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짐을 느낀다.

시를 소개하는 책을 통해서 여러 작가들의 시를 읽는 것은, 시집에서 시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을 준다. 작가 신경림의 안내에 따라 그가 들려주는 시의 세계 속으로 날아가서, 타임머신을 타고 꿈을 꾸듯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매 꼭지마다 첫 장에 수록된 작가의 사진과 한 편의 시는, 이상하게도 그 몇 줄의 짧은 시가 나로 하여금 눈물을 왈칵 솟구치게 하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그 시가 담고 있는 사연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까닭이리라.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연이 아니라 그 시를 쓴 시인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 시 하나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올곧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시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을 주는가. 지면에 활자화되어 찍혀 있는 그 몇 줄 안 되는 말들이 어찌 이리도 눈물겹게 다가오는가. 고요했던 마음이 뜨거워짐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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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금질. 시를 읽으면 마음을 담금질하는 기분이다. 가슴을 얼얼하게 하는 감동과 눈물을 쏟게 만드는 시구 하나, 먹먹한 마음을 쓸어안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무심해지려 해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때리는 표현 앞에서 한없이 뜨거워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수많은 좋은 시인들이 있지만, 내가 오늘 다시 읽으며 가슴을 쓸어안게 되었던 시인은 백석이다. 그의 <나와 나탸사와 흰 당나귀>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는 말 그대로 ‘눈물겹다’. 한양대 국문과 모 교수는 그의 강의에서 백석의 시를 일컬어 ‘청승맞다’고 표현했다. ‘청승맞음’의 의미를 극한까지 끌고 가 그 절대적 경지에 이른 시인이 백석이라는 것이다. 청승맞음의 절창으로서 백석의 시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나의 마음을 두 번도, 세 번도 담금질하게 만든다.
누군가 나에게 책은 삼독을 해야 한다고 권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책의 내용으로, 한 번은 책의 작가로, 한 번은 책을 읽는 내 마음으로 방점을 두어 읽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1998년인가,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부터 어느덧 18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에는 신경림의 안내를 따라가기에 나의 발걸음은 참으로 둔하기 그지없었지만 지금은 당시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시의 울림을 더 많이 느끼며 한결 수월하게 따라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직 한 번의 시간을 더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또 다시 마음이 설렌다.
이동구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진로독서센터 연구원(광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