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는 수상록 제2권 11장에서 인간의 덕을 다룬다. 소제목이 ‘잔인함에 대하여’이므로 덕과는 뚜렷한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전반부에서 선과 덕을 구별하는 문제를 취급한다. 그중 흥미로운 대목을 인용해본다.
덕은 우리 내부에서 생기는 선을 향하는 성향과는 다른 것이며, 그보다 더 고귀한 것으로 생각된다. (…) 그런데 덕이란 단지 훌륭한 기질에 의해 조용히 평화롭게 이성의 길을 따라 인도되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라 위대하고 적극적인 것을 의미한다. 천성적으로 성품이 온화하고 선량하여 모욕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의 행위는 매우 훌륭하고 칭찬할 만한 행위이다. 그렇지만 모욕을 당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면서도 이성이라는 무기로써 무장하여 자기 내부의 격렬한 복수심과 싸우고 그 치열한 내적 투쟁을 겪은 후에 마침내 자기 내부의 복수심을 지배한 사람의 행위는 말할 나위도 없이 전자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 전자는 선하게 행동한 것이며 후자는 덕스럽게 행동한 것이다.(p.401)
누가 ‘열 받게’ 했다고 치자. 자존심을 세우는 타입이라 벌컥 성이 치민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이런 일 때문에 열 받는 자신이 한심스레 느껴진다. 더구나 비슷한 상황을 당해도 늘 무덤덤하게 구는 사람을 보면 더 심한 열기가 머리끝까지 오른다. 아직 인격이 덜 되었나.
타고난 천성은 좀처럼 바꾸기 어렵다. 대신 이성의 통제력을 길러 격한 감정을 다스리는 힘겨운 내적 투쟁을 할 줄 아는 방법은 배울 여지가 있다. 천성이 부족하더라도 노력하면 될 가능성도 있다. 다행이다.
화가 난다는 사실 자체를 도덕의 잣대로 사용할 때 우리는 열등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몽테뉴가 설명을 따르면 의지와 함께 발휘된 덕만이 진정한 덕이다. 마음을 비우고 세상사에 초월한 도인(道人)이 되거나, 아니면 열 받는 그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의지력을 키워 도덕적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앞의 목표는 도달 불가능한 듯 보인다. 후자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김우영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원(경기 안양여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