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09)] 진로독서의 시작은 자아를 이해하는 것…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글로벌이코노믹

[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09)] 진로독서의 시작은 자아를 이해하는 것…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얼마 전 4월이 막 시작될 무렵, 서울 성동구에 있는 무학여고에 진로독서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당초 계획은 90명 정도가 대상이었는데 신청자가 200명이 넘어 진로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2시간 동안 다른 활동 없이 가만히 앉아서 강연을 들어야만 해 별로 재미가 없을 텐데 아이들은 고맙고 기특하게도 귀를 기울이고 함께 호흡을 맞춰주었습니다. 이제 성인으로 접어들 나이인지라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야 대학 진학 시에 유리하다는 선생님들의 조언 때문인지 아무튼 성황리에 강연을 마치게 되어 나름 뿌듯했습니다.

이날 강연 내용은 ‘꿈을 찾는 진로독서와 글쓰기’로 진로독서가 왜 필요하며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진로와 관련된 도서는 어떻게 선정해야 하며 어디에 초점을 맞춰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진로노트 작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진로독서 계획 세우기인데 그 중에서도 첫 단계인 ‘나의 이해와 진로’ 관련 도서 선정의 사례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비록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멀지만 현실적으로 공감요소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던 듯합니다.

이미지 확대보기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의 일과를 보면 숨이 턱 막힙니다. 오후 4시까지 계속되는 수업 시간에 연이어 교장 선생님 댁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어 과외 수업, 6시에는 목사님의 도움으로 라틴어와 종교 공부를 복습해야 하며, 일주일에 두 번은 수학 선생님께 지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스의 일과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여 밤 10시가 넘도록 학교 공부를 하고, 학원교습이나 과외 등의 사교육을 받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일과에 비하면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스 기벤라트는 슈바르츠발트라는 마을에서 가장 영리하고 출중한 아이이기에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크기 때문에 이렇게 빡쎄게(?)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은 일등부터 꼴찌까지 누구나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한스가 이 시대에 살아간다면 엄친아 중 슈퍼 갑(?)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신학교에 입학한 한스는 시를 쓰는 하일러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에 회의를 품게 되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견습공으로 일을 하게 되는데 어느 날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물에 빠져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총기가 넘치고 윤기가 흐르던 한 소년의 삶을 짓밟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인가요? 한스는 주변 사람들의 욕구와 기대 때문에 한순간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자기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해하며 자신의 특성에 맞는 꿈과 비전을 가질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한스처럼 주변 어른들과 학제, 그리고 억압된 교육 현실로 인해 힘겹게 청소년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목숨까지 포기하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한스는 마을에서 뽑힌 단 한 명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이런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된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진로교육의 시작입니다. 자아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아발견을 하도록 함으로써 자기주도적으로 구체적인 삶의 계획을 설계하도록 한다면 아이들이 갖고 있는 능력은 저마다의 인생에서 큰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예경순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진로독서연구소장(서울교대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