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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19)]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인문학 위기 아닌 인문대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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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19)]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인문학 위기 아닌 인문대학의 위기

최근 뉴스에 오르내리는 대학 소식은 적어도 인문계생들에게는 우울하기만 하다. 알파고가 인공지능의 실체를 확 느끼게 하자 반대급부로 “이제 인문학이야” 하는 말들이 잠깐 스쳐가긴 했다. 물론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니겠냐는 진단이 함께했다. 그러나 폭풍을 마주한 작은 촛불 같은 희망도 취업률이라는 잣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을 때 이미 예상된 미래가 아니었을까. 현실 세계에서는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공부가 환금성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다만 인간답게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면 취업이 잘 되든 안 되든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기 마련이다. 거시적 통계상에서는 패배한 듯 보여도 개개인의 세밀한 삶을 따라가 보면 밑지는 장사가 아닌 경우도 꽤 많다. 위태한 듯 흔들리는 저 작은 촛불이 절대 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의 측면에서 그레이트 북스(고전 100권)를 커리큘럼으로 삼은 유명한 예는 미국 세인트존스 칼리지다. 국내에도 독서 운동에 관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여러 번 회자한 대학이다. 1696년 설립되었고, 1937년에 고전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전체 학생 450명. 시험이 없다. 지원자는 자신에 관한 에세이를 제출하고 그중 80~85%가 입학을 허가받는다.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연평균 2만3500달러가 넘는 생활장학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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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앞에서 취업률을 운운하기란 어렵다. 애초부터 관심도 없어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연상시키는 학습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학생도 교수도 차이가 있기 어렵다.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동료일 뿐이다. 그러나 이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하버드대를 나온 듯 몸값이 자동으로 올라가지는 않는 듯싶다. 그러니 영화에 등장하는 격렬한 토론과 낭만적 대학 생활 끝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에 단번에 오르는 해피 엔딩은 아니다. 대신 공부의 의미를 깨닫고 방향을 잘 잡도록 하여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선택해 만족한 삶을 살게 인도한다는 차원에서 강점이 느껴진다.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대한 정보를 찾다 얻어걸린 책이 로렌 포프의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이다. 로렌 포프는 아이비리그보다 더 내실 있고 뛰어난 대학을 소개한다는 차원에서 미국 곳곳에 숨어 있는 훌륭한 대한 40곳을 소개하고 있다. 대학별로 직접 방문하여 교수, 학생을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이에 덧붙여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된 졸업생을 일일이 취재하여 대학이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집요하게 확인한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소개된 대학별로 유명한 전공분야가 다양하므로 일률적으로 이렇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규모가 작게 유지하여 학생, 교수, 교직원이 공동체를 이루려 한다, 학문적 성취보다는 학생 개개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 교수 자신도 성숙해간다는 느낌을 받으며 만족해한다, 졸업생들은 대학이 자기 삶을 변화시켰다고 확신한다, 대학 동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대학 이후의 삶에서 자기 주도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미국에는 아이비리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식의 진부한 결론을 내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의 고등교육이 본받을 모델인가 하는 의구심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로렌 포프가 말하고자 했던 바에 동의한다. “이 책의 40개 대학이 학생들의 지성과 영혼에 불어넣어 주는 혜택과 비교할 때 ‘아이비리그 교육’이란 찬사는 모순덩어리다. 이들 대학은 아이비리그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뿐 아니라 진정으로 학생들을 원한다.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주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학교를 사랑하게 된다.”(p.26)

흔히 말하듯 지금이 인문학의 위기인지 인문대학의 위기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인문학이 삶의 의미 부여와 탐구에 밀접한 것이라면, 인문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인문학 훈풍이 더 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포프의 책에 등장하는 리버럴 아츠 중심 대학들은 매우 흥미롭다. 교육의 울타리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눈여겨볼 관심거리이기도 하다.
김우영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원(경기 안양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