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칠의 음악 기행(1)] 불가리아(Bulgaria) 편 ①아, 쁘리야텔 불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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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소피아, 오케스트라 등 낭만적 단어들이 떠오르는 지금, 나의 치열한 일상과 고민, 그 이면을 이전에 애기해 본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제 지휘는 나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나는 땀, 노력, 열정의 자양분을 선율로 띄우고 떳떳하게 사라져 가는 연어적 삶을 존중한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가 개봉되던 해, 피아니스트(애드리언 브로디)처럼 나의 절대 고독을 헤아린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2003년 '겨울의 위기'가 닥치기 전, 나는 한국에서 촉망받는 호른 연주자였다. 호른 연주자로 상종가를 치던 나는 무리했던 탓인지 어느 순간 더 이상 악기를 불 수 없게 되었다. 대전시향의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하기로 했었고, 공연 하루 전날 천안대학교에서 연습을 하고 대전으로 갔다. 그런데 대전시향 아침 연습 때, 호른에서 소리가 나질 않았다.
내가 연주생활을 접어야 했던 첫날의 풍경이다. 차가운 겨울바람보다 더한 연습장의 냉기와 놀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눈동자들이 아직도 선하다. 15년 동안 해온 호른 연주자 생활을 접고, 실의에 빠진 나에게 한 친구가 연주자가 아닌 지휘자의 길을 가보는 게 어떨지 진심어린 조언을 던졌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미지의 세계로 나를 위탁하는 유학을 떠났다.
음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연주자가 지휘자로 변신한 경우도 많지 않은가?"하고 위안을 삼으면서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난 것이다. 참 쓸쓸한 출국이었다. "베를린 필의 사이몬 래틀 경이 타악기 연주자, 곽승 지휘자가 트럼펫 연주자 아니었던가." 그들은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고, 난 음악의 끈을 놓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지휘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졸업 후 나는 불가리아 제2의 수도, 플로브디프 시(市)의 '플로브디프 필하모닉'의 초청을 받아 정식 객원 지휘자로 데뷔했다. 2006년 9월부터 '소피아 필하모닉' 객원지휘를 맡았고, 점차 불가리아 전역을 지휘하게 되었다. 독일과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불가리아 음악가들은 세계적 오페라 가수 '게나 디미트로바'(2005년 사망)를 비롯하여 많은 연주자들이 세계적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이다.
소프라노 게나 디미트로바(Ghena Dimitrova•1941.5.6~2005.6.11.)는 소피아 음악 아카데미에서 발성법을 공부한 뒤 1967년 12월 27일 소피아에서 오페라 '나부코'의 주연인 아비가일레 역으로 청중들의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녀는 압도적 미모와 역동적 고음을 소화하는 가창력으로 라 스칼라, 빈 국립 오페라, 파리 오페라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등 전 세계 오페라 무대를 장악하며 『아이다』 『일 트로바토레』 『토스카』 『투란도트』 『카발리아 루스티카나』 『멕베스』 『오텔로』 등 수많은 오페라를 통해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모든 도시에 오페라 극장이 있을 정도로 성악이 강한 나라, 불가리아인들은 노래를 좋아한다. 흑해를 끼고 있는 그들은 한국인들과 기질이 많이 닮아 있다. 불가리아인들은 여름 야외 오페라 공연을 즐길 정도로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매주 오페라 연주가 있고, 1회 이상 공연하기 때문에 입장료는 만원에서 오만원 정도이다.
불가리아는 2000년대 이전 공산주의 시절에 연극과 음악을 중시해서 예술계에 많은 지원을 했고, 음악적으로 우수한 국가이다. 소피아에는 내가 2013년도에 모차르트의 『돈조바니』를 연주한 적이 있는 '소피아 국립 오페라단'이 있다. 내가 객원으로 있는 궁중악단 전신의 소피아 필하모닉은 88년 역사의 동유럽에서 잘 알려진 수준급 오케스트라이다.
이미지 확대보기불가리아의 많은 연주자들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악장, 단원, 솔리스트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로의 개편 이후 예술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축소되고, 국민들도 예술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면서 예전보다 상황이 나빠졌다. 내가 여러 도시를 지휘하면서 느낀 점은 불가리아인들은 음악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불가리아를 부여족의 나라라고 말하는 역사학자들도 있지만 칭기스칸 통일설이 들리고 있다. 불가리아인들은 아시아 계통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들의 문화는 적지 않게 동양적인 것이 많다. 대문과 기와지붕이 그렇고, 우리나라 내장탕 같은 음식도 있다. 불가리아는 500년 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았지만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간직한 강인한 민족이다.
나도 좋아하는 '양치즈를 곁들인 정통 불가리아 숍스카 샐러드'는 동유럽에서는 유명한 샐러드다. 요구르트의 나라이기에 요구르트를 이용한 많은 음식들은 불가리아에서 나온 것이다. 옛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마케도니아 등 발칸 민족은 서로 통하는 게 많아서 불가리아 지식인들은 5개 국어를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언어 능력이 뛰어난 민족인 것 같다.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동구권은 화폐개혁 등 체제가 바뀌면서 경기가 최악으로 변했다. 예술계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외국에서 오케스트라를 사서 연주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많은 비전문가가 공연을 하게 되었고, 아시아 음악가들이 러시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의 오케스트라를 이용, 자신의 그레이드 상승에 이용했다.
이런 과거의 약점 탓에 동유럽의 음악이 얏보이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정상 상황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것만은 확신한다. 불가리아 단원들과 초청 솔리스트와의 완벽한 호흡을 잘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불가리아에서 초청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거의 불가리아 전역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기 때문에 이영칠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불가리아 사정상 개런티는 많지 않지만 성공적인 공연의 보람을 느끼며 한국인으로서 자존감 높은 서양 음악인들의 기를 꺾고 해냈다는 데에 자긍심을 느낀다.
불가리아 음악계와의 교류를 위한 노력으로 2009년에 '소피아 필하모닉'이 내한했을 때 다섯 번의 연주를 했다. 이 결과 한국 음악계에서 불가리아의 오케스트라를 새롭게 보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불가리아 오케스트라에도 한국의 많은 음악가들을 소개했다. 반응은 반반이다. 클래식은 공통언어여서 연주를 잘하면 반응이 좋고 못하면 별로다.
불가리아에서 기억에 남는 공연은 불가리아 오케스트라 연주 사상 최초로 한국 전통악기 피리와 태평소를 초대한 일이었다. 전통악기가 교포 사회가 아닌 유럽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 선보인 것이다. 불가리아 전통 악기도 비슷한 게 있어서 불가리아인들은 친밀하게 느꼈고, 반응은 아주 좋았다.
불가리아인들의 염원을 담은 국가의 가사를 살펴본다.
「1절. 훌륭한 오래된 산과/다음엔 다뉴브의 빛/그 태양은 트라키아 위에 빛나리라. 높이 타오르는 피린을 위하여/친애하는 조국이여, 지구는 그대의 하늘이라. 그대의 아름다움과 공평함이여/아 그들은 무한하리라.
2절. 수 없는 그들의 목숨을 바친/친애하는 우리 조국을 위하여./어머니께서는 힘을 주셨네
그들 쪽으로 따라가셨네./친애하는 조국이여,/지구는 그대의 하늘이라. 그대의 아름다움과 공평함이여/아 그들은 무한하리라.」
이미지 확대보기이영칠 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객원지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