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도 나의 연주여행에 포함되어 있었다. 유럽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인심 좋은 체코는 수도 프라하 등 여러 도시가 촬영 장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관심이 많은 나라이다. 소련의 침공을 받은 슬픈 기억이 있지만 느린 서정과 흐린 추억, 여름의 낭만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프라하에는 메이저 오케스트라로 ‘체코 필모닉’과 ‘프라하 심포니’ 두 개가 있다.
2008년에 지휘자로서는 초보였던 나는 민영오케스트라인 ‘보헤미안 심포니’에서 처음 연주를 하게 되었다. 이후 2년에 걸쳐 일 년에 두세 번 연주를 했다. 이 시절 프라하에서 기차로 네 시간이나 걸리는 체코의 유명한 작곡가의 고향 오스트라바에 위치한 ‘야냐첵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차창 밖으로 길게 펼쳐진 평원은 지친 나그네의 영혼을 달래주는 고향 같았다.
‘야냐첵 오케스트라’는 한국에도 많이 왔고 잘 알려진 오케스트라이다. 도시가 크지 않아 연주회는 한 달에 정기연주회는 2번 정도 열린다. 이 지역에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다. 현대자동차 후원으로 ‘야냐첵 오케스트라’를 연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 현대자동차 공장을 견학한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나라의 자동차가 체코인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야냐첵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은 피터였다. 피터는 내 지휘를 좋아했다. 2010년 후반에 난 ‘야냐첵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물망에 올랐다. 음악감독 피터는 나를 상임지휘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슬로베니아 사람이었다. 공산주의 시절 체코는 체코슬로바키아로 불려졌다. 지금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눠져 서로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이다.
오스트라바 지역은 전형적인 체코인들의 고장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체코인들과 음악 작업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왜냐하면 내 스타일은 정서적인데 체코음악가들은 대체로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을 잘 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습할 때도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난 ‘야냐첵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될 뻔 했었다. 내부적 문제로 음악감독은 경질되었다.
이후 나도 ‘야냐첵 오케스트라’와 결별 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계도 일반사회와 같이 텃세도 많고 시기 질투도 많다. 나 또한 동양인이라 불이익을 본적도 많다. 나는 체코에서는 ‘보헤미안 심포니’와 ‘야냐첵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한국인이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체코의 대표 오케스트라와 국민음악가를 살펴본다.
역사도 오래 되고, 명실 공히 체코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이다. 특히 현 섹션에 정평이 있고 합주력도 뛰어나다. 고아하고 수수한 맛을 담고 있는 사운드는 고도 프라하의 전통에 기인한 것이다. 관악 섹션은 부족한 점이 있지만 체코 특유의 울림을 갖고 있으며, 모국의 작품 등에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뉘앙스를 풍긴다. 레퍼토리는 극히 넓으나, 슬라브 계통의 작품에 정평이 있으며, 모국의 드보르작, 야나체크 등에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또 푸르네나 보도가 지휘하는 프랑스 음악에도 의외의 적응성을 보이고 있다.
체코의 국민 음악가로는 스메타나, 드보르작, 야나첵을 꼽을 수 있다.
스메타나(Bedrich Smetanan, 1824~1884)는 체코 근대 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작곡가이다. 맥주 제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 1839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홀로 프라하로 나왔다가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큰 감명을 받는다. 고등학교는 다시 시골에서 마친 후 프라하로 돌아가 음악 가정교사를 하면서 요제프 프로크슈에게 음악이론과 작곡법을 배웠다.
프라하에도 자유주의 혁명의 영향이 밀어닥친 1848년 스메타나는 혁명군을 위해 행진곡이나 자유의 노래를 작곡하고, 그 해 리스트의 원조를 받아 프라하에 음악학교를 설립했다. 1856년 스웨덴의 항구도시 예테보리시 필하모니의 지휘자로 초청받고 5년 동안 스웨덴에 머물렀다.
1859년 체코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가 나폴레옹 3세와의 전쟁에서 패전하여 영내의 민족 탄압이 완화되면서 체코 민족운동이 활발해지자, 1861년 프라하로 돌아가서 독립 운동의 음악적 대변인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인〉, 〈달리보르〉 같은 독립운동을 고취한 애국적인 오페라와 체코 농촌의 모습을 묘사한 〈팔려간 신부〉 등을 속속 작곡했다.
1874년 여름 그는 난청의 징후와 정치 세력에 대한 격심한 반감으로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시골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작곡에만 열중했다. 1881년 국민극장 낙성식에서 체코의 건국 신화를 오페라화한 〈리부셰〉가 초연되었으나, 작곡가 자신은 완전히 청각 기능을 상실해 그 연주를 들을 수 없었다. 3년 후 발광하여 프라하의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드보르작(Antonin Dvo?ak, 1841~1904)은 프라하 근교에서 여관과 푸줏간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찍부터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나 부친은 맏아들에게 가업을 계승시킬 생각으로 12세 때 경영 업무에 필요한 독일어를 가르치기 위해 가까운 소도시 로즈니스에 보냈다. 거기서 독일어 교사이며 오르간 연주자인 안토닌 리만에게 음악이론과 피아노 연주법을 배웠다.
리만의 덕택으로 프라하로 나와 오르간 학교에서 음악을 배우고, 카렐콤차크 악단에 들어가 비올라주자로서 연주를 했다. 1859년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 패전하자 민족운동이 활발해졌고, 체코의 국민음악을 위한 가설극장이 열렸으며 합창단인 흘라홀이 설립되었다. 이때 체코 가설극장 관현악단에 들어간 드보르작은 1862년부터 1871년까지 10년 간 비올라를 담당했다.
1866년에는 스메타나가 지휘자로 부임해와 체코 국민음악을 일으키려는 그의 영향을 받게 된다. 1873년 민족적 제재의 〈빌라 호라의 후계자들〉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가설극장을 사임하고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체코의 종주국인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젊고 가난하고 재능이 있는 예술가’에게 주는 국가 보조기금에 응모해 선정되었다.
그는 1875년부터 5년 동안 해마다 작품을 제출하여 400 굴덴이라는 거액을 받게 되었다. 당시 심사위원 브람스가 드보르작을 높이 평가했고, 그의 명성이 국내외적으로 높아지면서 젊은 야나첵도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1884년부터 1896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친 영국 방문에서도 헨델 이후 처음이라는 대환영을 받았고, 케임브리지 대학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이미지 확대보기야나첵(Leos Janacek, 1854~1928)은 체코 모라비아 지방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이다. 가난한 벽촌 초등학교 교사의 열 번째 아들로 태어나 모라비아의 중심 도시 브루노의 성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 부속학교에 다니면서 성가대에 들어갔다. 1869년 15세때 브루노의 사범학교로 진학했고, 1872년에 졸업 후 모교의 교사가 되었다.
1876년에서 1888년까지 브루노 클럽의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지휘자를 역임하면서, 그 사이 프라하 오르간 학교, 라이프치히 음악원, 빈 음악원의 여름 학기에 단기간 씩 유학했다. 1881년 창립된 브루노 오르간 학교의 교장이 되고, 1919년에는 브루노 오르간 학교와 부르노 클럽의 음악학교를 통합해 프라하 음악원 브루노 분교를 발족시켰으며, 1920~1925년 마스터클럽에서 작곡을 가르쳤다. 그는 평생 브루노에 머물러 별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60대 중반 이후 비로소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체코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살펴보면,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과거 사회주의 시절에는 유럽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 20위 정도일 정도로 그 평가가 많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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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이 학교는 총장 명의로 행복도시건설청장에게 양해각서의 전 단계인 '투자 의향서(LOI·Letter of Intent )'를 보내온 바 있다. 브르노국립예술대학은 체코의 국민 음악가 '레오시 야나첵'이 1919년 설립한 대학으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야나첵 4중주단'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 체코에 소개된 우리나라 음악가로는 줄리안 코바체프(Julian Kovatchev) 지휘로 2016년 9월 28일(수)오후 여덟시, 프라하 스메타나홀(Prague Municipal House Smetana Hall)에서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체코 공연에 출연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Bomsori Kim)를 들 수 있다.
이영칠 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객원지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