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덕혜옹주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서 실제 덕혜옹주(1912~1989)가 겪었던 비극적인 이야기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정략결혼을 통해 덕혜옹주의 남편이 된 소 다케유키가 남긴 편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이혼한 뒤, 다케유키는 다른 일본 여성과 재혼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진심어린 시가 공개되면서 덕혜를 향한 사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케유키는 그의 시에서 "미쳤다 해도 성스러운 신의 딸이므로 그 안쓰러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혼을 잃어버린 사람의 병구완으로 잠시 잠깐에 불과한 내 삶도 이제 끝나가려 한다" "나이먹지 않고 언제나 어린 아름다운 눈썹의 소녀여. 네 눈동자가 깜빡거릴 때의 아름다움은 칠 월 칠석날 밤에 빛나는 별 같았다"는 문장으로 덕혜를 향한 진심어린 사랑을 표현했다.
한편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나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조선황실에서 성장했지만 일제 치하로 접어들면서 일본 귀족과 강제 결혼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덕혜옹주는 1925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 냉대와 감시로 고통의 십대 시절을 보내다 일본 백작인 소 다케유키와 혼인했다.
아버지 고종이 1919년 승하한 뒤로는 독살에 대한 공포도 호소했고 1930년 어머니 복녕당 양씨가 사망한 뒤로는 몽유병과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분열 증세가 심해져 1946년에는 남편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해 10년간 감금생활을 당했고 1955년 정략결혼을 주선했던 일본 데이메이 황후가 사망한 뒤 곧 이혼당했다.
이후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쇠약해져 힘든 말년을 보내다 1962년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올케인 이방자 여사의 간호를 받으며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989년 낙선재에서 생을 마감했다.
석지헌 기자 cak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