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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스포츠 24] 마라도나 이어 이번엔 이탈리아 축구영웅 파올로 로시 64세를 일기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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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스포츠 24] 마라도나 이어 이번엔 이탈리아 축구영웅 파올로 로시 64세를 일기로 타계

사진은 파올로 로시가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는 모습.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은 파올로 로시가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는 모습.

아르헨티나의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죽음이 세계에 준 충격과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영웅이 너무 빨리 떠나버렸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세 번째 우승에 크게 공헌한 전 이탈리아 대표 스트라이커 파올로 로시가 현지시각 9일 64세를 일기로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2010년 로시와 결혼한 언론인의 아내 페데리카 카펠레티 씨가 자신의 SNS를 통해 남편의 죽음을 발표하면서 “당신 같은 사람은 이제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독특하고, 특별하며, 당신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두 사람의 고즈넉한 사진과 ‘영원히’라는 글과 함께 공개했다. 이탈리아 최대 스포츠신문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한밤의 끔찍한 뉴스다. 그의 죽음은 이탈리아, 그리고 세계 축구계를 혼란스럽게 했다”며 불세출 스트라이커의 위대한 궤적을 되새기며 명복을 빌었다.

1956년 9월 23일 스페인 토스카나주 플라토에서 태어난 로시는 16세에 유벤투스와 계약하지만, 곧바로 무릎을 다쳐 수술하며 장기 재활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선망하던 펠레와 같은 골잡이의 꿈을 버리지 않고 CF로서 능력을 가다듬어 77년 비첸차에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탈리아 대표선수로 77년 데뷔, 명장 엔조 베아르조트의 눈에 들어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 주전급 선수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3득점으로 4위 입상에 기여하며 이탈리아의 새로운 에이스 후보로 단숨에 주목도를 높였다.

그러나 페루자 시절인 1980년 승부 조작 사건 연루 의혹으로 장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는다. 나중에 2-2로 비긴 아베리노전을 의심받았는데 “이 경기에서 나는 2골을 터뜨리고도 이상하게 말려들었다. 하지도 않은 것으로 징계을 받는 것은 괴로웠다”라고 무고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징계 기간 중 운동복 회사에서 일하며 훈련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82년 5월 복귀해 그해 스페인 월드컵에서 놀라운 멤버가 됐다. 조별리그에서 무득점이었던 그가 당시 세계 최강 브라질전에서 5분에 헤더로 선제골을 넣고 심리적 압박서 풀려난(본인 얘기) 로시는 해트트릭을 달성해 역사에 남을 이변을 일으켰고, 이후, 준결승 폴란드전에서 팀의 모든 득점(2점), 결승전 서독전에서도 귀중한 선제골을 올렸다.

대회 득점왕에 대회 MVP에도 뽑혔고 그해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정상에 오른 로시는 이후 몸이 나아지지 않자 유벤투스에서는 1985년 유럽 제패에 성공했으나 같은 해 AC밀란으로 이적, 베로나와 건너가 1987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밀란 시절 동료였던 파올로 말디니가 “그의 은퇴에 아쉬움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고 회고할 정도로 커리어 막판 다시 부상에 시달렸던 로시는 은퇴 후 한동안 축구를 잊고 싶어 부동산업에 매달렸지만, 이후에는 리그 직책 외에 해설자, 그리고 축구 대사 역할도 했다.

깔끔한 외모와 어울리는 깔끔한 위치 선정, 좋은 드리블에 수비수를 돌파하는 스피드, 겉으로 보기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과 함께 팀 공격 전체를 조율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38년 전 이탈리아 온 국민을 환희케 하고 동시에 브라질 온 국민을 울렸던 로시. 그러나 지금은 세계가 그의 너무 이른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