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내내 쉴 틈 없이 바쁜 그를 대신해 펜을 잡은 이는 ‘뉴요커’의 저널리스트 스티븐 위트. 3년간 수시로 그를 만나 구술을 받고 그의 행적을 좇아 가족·은사·주민·임직원 등 수백여 명을 인터뷰한 끝에 ‘인간 젠슨 황의 회로도’가 완성됐다. 그 회로도에는 마치 전기 소자처럼 인생의 굴곡이 곳곳에 꽂혀 있고, 이민자 젠슨 황이 감내해야 했던 편견과 차별의 시간이 송글송글 납땜되어 있다. 또한 그런 부정적 감정을 고스란히 창조와 도전의 열정으로 치환해낸 반도체가 촘촘히 아로새겨져 있다.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1973년에서 시작된다. 대만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미국 켄터키주로 건너온 그해다. 그의 나이 불과 열 살이었다. 부모도 없이 형과 단둘이 머나먼 이국 시골 마을에 뚝 떨어진 것이다. 대만인이나 중국인은커녕 아시아인조차 단 한 명도 없던 벽지(僻地)였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주변 사람 모두가 젠슨 황 형제를 차별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킬 따름이었다. 훗날 오랜 세월 동안 엔비디아를 이끌며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의지력은 이때 길러진 것이다.
그가 설립한 엔비디아가 숱한 고비를 맞닥뜨렸을 때도 백척간두의 위기감을 발전의 에너지로 전환시켰다. 흔들리는 조직을 다지고, 뒤처진 기술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혹독한 담금질의 시간으로 삼았다. 새로운 제품 개발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거듭된 실패에도 낙심하지 않고 매번 원인을 분석해 개선점을 찾아나갔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일론 머스크와 젠슨 황을 비교한 부분이다. 우선 둘의 공통점은 둘 다 이민자였다는 점, 워커홀릭에다 괴팍한 성격, 뛰어난 엔지니어라는 점 등이다. 안정적인 사업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결국 성취해 낸다는 면에서도 똑같다. 반면에 둘의 차이점이라면 머스크는 환상에서 출발해 현실로 돌아오는 비전가이고, 젠슨은 현실에서 시작해 환상으로 나아가는 비전가라는 것이다. 머스크가 전격적으로 해고하는 일이 잦다는 점도 젠슨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AI의 위험성에 대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머스크는 AI가 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반면, 젠슨은 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젠슨 황의 위대한 여정을 복기하는 이 책은 1973년 미국 시골에서 시작해 학창 시절을 거쳐 엔비디아의 창업과 고난의 시기, 운명적인 AI와의 만남, 그 이후 이어진 폭발적 성장 시기까지 마치 강처럼 때론 세차게 굽이쳐 흐르고, 때로는 도도하게 흘러간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긴 러닝 타임의 대작 영화 한 편을 본 듯하다.
2000년대 '황의 법칙'이란 금언(金言)을 만들어낸 것은 국내 한 기업인이었지만 이제는 그 말의 주인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젠슨 황이 개척해 나가고 있는 길이 곧 인공지능의 역사이자 그가 세우는 룰이 곧 인공지능 개발 경쟁 무대의 룰이다.
양준영 교보문고 eBook사업팀 과장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