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통합플랫폼 구축 한국 금융영토 해외 확장에 새 역사
이미지 확대보기◆서울은행, 최초의 지방은행에서 한국 번영의 상징으로
이미지 확대보기하나은행의 가장 오래된 뿌리는 지난 1959년 설립한 최초의 지방은행인 서울은행이다. 서울은행은 한국 정부 수립 후 순수 민간 자본으로 중소기업 운영 자금 공급을 목적으로 탄생했다. 1959년 당시는 6.25 전쟁이 끝난 지 6년이 지난 시점으로 전쟁을 통해 농업 중심의 경제 기반이 파괴됐고, 막대한 실업자가 양산됐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하는 일이 본격화됐고, 산업화 흐름에 중소기업도 활성화 됐다.
서울은행은 설립 당시 영업 구역을 서울과 일부 경기지역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1962년 부산지점을 열고 이를 발판으로 전국 은행으로 인가까지 받았다. 서울은행은 같은 해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맞물려 성장세를 보였다. 출범 10년 차인 1969년 10월 서울은행의 수신액은 478억 원, 여신액은 329억 원에 달했다.
이미지 확대보기1976년 서울은행은 신탁전담은행인 한국신탁은행과 합병하며 다시 도약한다. 이는 국내 은행 산업 최초의 합병이었다. 금융 업무의 국제화에 따른 은행 대형화 필요성, 간접 비용 절감, 과당 경쟁 완화 등을 취지로 재정당국에 의해 추진됐다. 특히 소매 금융 중심의 서울은행과 신탁 업무 중심의 한국신탁은행의 합병은 상호 보완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미지 확대보기합병을 통해 서울은행은 서울신탁은행으로 은행명도 바꿨다. 다만 해당 명칭은 1995년 다시 '서울은행'으로 부활하게 된다. 합병 전 5대 시중은행 중 서울은행의 총예금 점유비율은 12.4%였지만 합병 이후엔 18%까지 상승했다. 신탁 부문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획득했다.
1982년에는 정부 소유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에 성공했으며, 이듬해엔 중소기업부를 신설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강화했다. 1988년에는 서울 장애인 올림픽의 스폰서로 나서는 등 서울은행은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한국 번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997년 전세계를 강타한 외환위기는 서울은행을 침몰시킨다.
◆세계와의 ‘창구’ 외환은행, 금융의 국제화 이끌어낸 일등공신
이미지 확대보기외환은행은 출범 직후 약 10년 간 수출입 및 외환 거래 점유율이 26.4%에 달할 만큼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특히 한국은행으로부터 이어진 광범위한 영업망을 통해 국내에 외자를 도입하는 등 외환 업무의 창구로써 국내 금융의 국제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외환은행은 점차 외환전문 특수은행 성격 유지보다 일반 시중은행에 가깝게 변해간다. 1970년대 이후 시중은행이 외국환업무를 취급하면서 독점적 지위가 흐려진 탓이다. 이후 외환은행은 1989년 금융시장 개방의 영향으로 특수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민영화된다.
이미지 확대보기이런 가운데 외환은행의 성장은 가속화됐다. 1972년에는 국내 최초로 예금 온라인 업무를 개시해 '금융 전산화'의 포문을 열었다. 1977년에는 국내 은행 최초로 어음 인수 및 증권 발행 업무를 개시했다. 또한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공인 은행으로 지정될 만큼 성장했다. 1996년 당시 외환 은행의 자산은 41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외환은행은 퇴출위기에 몰린다. 1998년 독일 코메르츠방크로부터 외자를 유치해 간신히 퇴출을 면했지만, 경영 악화는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론스타 게이트’로 알려진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에 매각됐고,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인수된다.
◆늦은 출발에 절실했던 하나은행, 철저한 ‘고급화’로 최고가 되다
이미지 확대보기하나은행의 마지막 뿌리는 1971년 6월 설립된 한국투자금융이다. 한국투자금융은 장기신용은행의 전신격인 한국개발금융이 설립한 단자 회사다. 1972년에 제정된 ‘단기금융법’에 의해 정식인가를 획득했다. 1984년 CMA를 최초로 발매했으며, 1988년 수신고 1조 원을 돌파하는 등 20여 년간 금융사에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1990년 ‘금융기관의 합병과 전환에 관한 법률’ 제정을 바탕으로 1991년 7월 한국투자금융은 하나은행으로 거듭난다. 출범 당시 하나은행의 자산은 약 1조5000억 원, 영업점은 2곳이었으며, 직원은 347명에 불과했다. 당시 시중은행들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한 출발이었다.
이미지 확대보기특히 5대 은행을 비롯한 다른 시중은행의 영업 체계는 공고했다. 후발 주자인 하나은행 입장에서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나은행이 빼든 무기는 '철저한 고급화 전략'이었다.
전신이 단자 회사였던 만큼 하나은행은 상대적으로 고액 자산가 고객 비중이 높았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개인 자산을 종합 관리해주는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에 주력했다. 점포를 고급스럽게 단장하고, 고금리 정책으로 부자고객들의 적극적인 유치에 나섰던 것이 주효했다. 결국 하나은행은 10년 뒤인 2001년 기준 자산 54조 원, 점포 수 298개의 대형 은행으로 급성장했다. 1993년에는 글로벌 금융지 ‘유로머니’가 선정한 ‘한국의 최고은행(Best Bank in Korea)’으로까지 선정됐다.
이미지 확대보기1997년 외환위기는 하나은행에게 도약의 기회였다. 하나은행은 부실은행으로 지정된 충청은행과 보람은행을 1998년, 1999년에 순차적으로 인수한다. 이어 2002년 12월에는 5대 은행으로 꼽히는 서울은행을 인수합병했다. 출범 11년 만에 자산 84조 원, 국내 3위 규모를 지닌 거대 은행으로 도약한 것.
이를 통해 하나은행은 상대적으로 약한 신탁부문을 보완했으며, 2005년엔 하나금융그룹을 출범시키며 비은행 포트폴리오도 넓혔다. 이어 2015년 9월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을 합병해 KEB하나은행으로 거듭났다.
◆해외로 향한 확장의 꿈, 세계를 ‘하나’로 묶을 그물망을 엮다
이미지 확대보기하나은행이란 이름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당초 은행명은 한국에서 아시아로 뻗어간다는 뜻의 ‘한아(韓亞)’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자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아 순화해 하나은행이 된 것. 해프닝에 그쳤지만 이는 하나은행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합병 이후 초거대 은행으로 거듭난 KEB하나은행은 2005년 출범한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특히 2014년 김정태 회장은 2025년까지 글로벌 수익비중을 40%까지 늘린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2019년 하나금융이 개시한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 GLN(Global Loyalty Network) 서비스도 하나은행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GLN는 전세계 금융사, 유통사, 포인트 사업자 등과 함께 디지털 머니를 자유롭게 교환, 사용할 수 있는 글로벌 통합 플랫폼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이를 위해 하나은행 인도네시아법인은 글로벌 모바일 플랫폼 라인(LINE)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지난달 디지털 뱅킹 서비스 ‘라인 뱅크’를 출시했다. 라인 뱅크는 국내 은행이 빅테크와 협업해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첫 사례다.
또한 중국법인은 지난해 알리바바, 씨트립(C-Trip) 등 현지 전자 상거래 플랫폼 기업과 업무 제휴를 통해 비대면 개인대출을 선보였다. 그 결과 중국 현지에서 개인대출 자산이 약 6300억 원이나 폭증 했다. 올해에도 태국, 베트남, 대만 등에 진출하며 글로벌 영토 확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하나은행은 국내은행 중 가장 많은 24개국에 진출했으며, 199개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오늘도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디지털 시대에 국경은 무의미하다. 사업 구상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시장을 우선적으로 염두하고 시작해야 한다”며 “상품, 프로세스, 인재채용 등 모든 업무 영역에서 글로벌을 지향하는 운영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o634@g-enews.com












































